[인사이트] ‘블록체인 판 반장선거’ 이오스 BP 투표에 결국 일이 터졌다

[김가현, 김지윤 기자] 3세대 블록체인을 표방하는 이오스(EOS)의 플랫폼 관리자들(BP)이 ‘표를 거래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의혹의 중심에 있던 중국 암호화폐 거래소 후오비는 해당 사실을 부인했지만, 시장에서는 이 의혹에 대해 ‘예견된 문제’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대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27일 중국의 이오스 전문 1인 미디어인 이오스원(EOSONE)은 위챗을 통해 “후오비의 내부 문건에 특정 BP끼리 투표권을 거래해서 BP 선출에 따른 이득을 취했다”고 밝혔다. 해당 문서에는 이 거래소가 20명의 이오스 BP 후보들에게 표를 주고, 이 가운데 16개 후보가 후오비에 표를 건넸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후오비 직원이 이 문건을 작성했다는 게 이오스원의 주장이다.

이후 후오비는 공식 입장을 통해 “현지 미디어가 제시한 내부 문건에 등장하는 이오스 BP들과 재무상 어떠한 관계도 맺지 않았다”며 “내부 조사를 마치는 대로 추가 입장을 내놓을 것”이라고 의혹을 부인했다.  

이오스는 21개 대표 관리자가 블록체인을 유지하는 구조다. 이오스 토큰을 가진 계정들이 BP 후보에 투표해서 상위 21개가 대표 자격을 얻는다. ‘위임지분증명(DPoS)’이라는 방식이다. 21개 관리자는 126초마다 선정되며, 투표권으로 쓰인 이오스 토큰이 BP 선정의 기준이다.

BP는 블록체인상에서 오가는 데이터를 검증 및 관리한다. 플랫폼에서 앱을 만들려는 팀에 컴퓨팅 자원(RAM, CPU, 대역폭)을 제공하는 것도 BP의 몫이다. 지난달 25일에는 특정 이오스 계정(gm3dcnqgenes)이 해킹당하자 해당 계정의 활동을 이오스 블록체인에 기록하지 않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BP가 플랫폼 유지부터 운영까지 상당한 역할을 맡았다는 걸 알 수 있다.

◆ 표 거래와 상호 투표, 차이는?

현재 200개 이상의 BP 후보들이 대표가 되기 위해 출마한 상태다. 토큰이코노미분석모임(TES)의 자료에 따르면 21위 안에 들어간 BP와 그 외 100개 후보 BP는 토큰 인플레이션으로 간접보상을 받는다. 지난 12일 기준 이오스 시가총액(약 5조3000억 원)을 기준으로 BP가 평균 한 해 받게 되는 보상은 약 224만 달러(25억 원)로 추정된다. 시가총액이 증가하면 보상 규모도 늘어난다.

이로 인해 이오스의 대표 BP가 되려는 선거 운동은 치열하다. 지난 6월 메인넷 공개 전부터 BP 후보들은 전 세계를 돌며 이오스 토큰 소유자들에게 투표를 권했다. 후보들은 자신이 대표 BP가 될 경우 이오스 생태계를 위해 어떤 이바지를 할지 공약을 내걸었다. ‘이오스 타워를 만들겠다’는 말부터 ‘이오스 프로젝트를 양성하겠다’, ‘이오스 전용 거래소를 설립하겠다’는 공약이 쏟아졌다.

이러한 선거 과정에서 후오비 거래소가 연루된 ‘표 거래’ 의혹을 재정의하는 의견도 나온다.  이오서울(EOSeoul)이라는 이름으로 BP 후보에 출마한 네오플라이의 권용길 센터장은 “표 거래와 상호 투표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권 센터장은 “만약 BP로서 역량과 기여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면 얼마든지 서로에게 투표할 수 있다”며 “이 경우 표 담합, 거래가 아니라 상호 투표라고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오스 BP 후보로 출마했던 아크로EOS 변진형 이사도 “후오비 의혹에 대해선 확실한 표 매수 물증이 없어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며  “이오스 규칙(헌법)에 위배되는 물증이 있다면 체인 상에서 BP를 제명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15일 기준 상위 21개 BP 투표 현황. 검은 막대는 비트파이넥스의 계정(bitfinexcw)이다. (image : 이오스어쏘리티)

◆ 이오스 투표 현장은 ‘기울어진 운동장’

그럼에도 두 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첫째, 이번 의혹은 단순히 BP 간의 문제가 아니라 대규모 거래소가 개입했다는 점이다. 현재 이오스 소유자들은 개인 계정이 아니라 거래소 계정을 통해 이오스를 소유한 경우가 많다. 개개인이 자기 이오스 지갑을 만들어, 토큰을 외부 지갑으로 빼지 않는 이상 해당 토큰은 거래소의 관할에 있다. 즉, 거래소는 직접 구매한 이오스와 더불어 고객의 명의로 된 토큰으로 BP 투표를 할 수 있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이오스의 투표 제도는 1인 1표 체제가 아니다. 하나의 지갑 계정이 여러 BP에 표를 던질 수 있다. 토큰 하나당 최대 30개 후보까지 고를 수 있다. 예컨대 10개 이오스 토큰을 표로 걸어둔 계정은 총 300개의 투표권을 가지며 한 BP에 최대 10개까지 중복 투표를 할 수 있다. 하나의 계정이 행사할 수 있는 투표권에 상한선은 없는 상황이다. 설령 제한이 생긴다 해도 블록체인 특성상 어차피 하나의 주체가 익명으로 여러 지갑 계정을 만들 수 있다.

정리하자면 최악의 경우 토큰을 많이 소유한 소위 ‘고래’들이 특정 BP에 표를 몰아줄 여지가 생긴다. 보스코인 전명산 기업전략이사(CSO)는 “기본적으로 1주 1표 모델은 주주자본주의와 동일하다”며 “경제적 이익과 의사결정 권한의 집중을 초래해 최대한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과거 투표에서도 이미 제기됐던 문제다. 데이터 분석 스타트업인 라이즈(Lyze)의 최재훈 대표는 “지난 6월 19일부터 7월 18일까지의 이오스 투표 데이터를 분석했을 때 당시 투표자 중 상위 25개 계정이 투표율의 절반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소인) 비트파이넥스의 이름을 단 지갑 계정이 13개나 있었다”며 “투표 패턴을 살펴보면 비슷한 BP를 찍는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본래 1주에 30표까지 허용하는 체제는 표 담합을 저지하려는 장치였다. 이오스 BP 후보인 노드원 서승표 분석가는 “투표율이 100%일 경우 지갑 계정 하나당 1개 표만 낼 수 있다면 전체 이오스의 5% 이상을 가진 쪽이 반드시 하나의 BP를 정할 수 있다”면서 “계정 하나당 21개 이상의 표를 행사할 수 있는 시점에는 이론적으로 전체 이오스의 50% 이상을 소유해야 하므로 특정 BP가 선출되는 걸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저조한 투표율과 이오스 토큰의 편중 등의 요인으로 이오스 투표 현장은 점점 기울고 있다. 이더리움 개발사인 온더 정순형 대표는 “투표라는 제도 자체가 참여율이 높기 어려운 거버넌스”라며 “중복 투표가 가능한 상황에선 서로 BP 자격을 유지시키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이오스는 커뮤니티 참여, 균형 잡힌 시스템이 필요한 상황이다. (image : giphy)

◆ 의혹이 생겨도 검증할 길이 없다

두 번째 의문점은 ‘커뮤니티에서 문제를 제기했을 때 해당 의혹을 검증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현재 후오비 거래소를 포함한 여타 BP들이 서로에게 투표했다는 정황 증거만 존재한다. 그리고 이오스 거버넌스 구조에서 사실 여부를 소명하도록 BP를 강제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ECAF(이오스 코어 중재판정부, EOS Core Arbitration Forum)는 BP들의 권력을 견제하는 대표적인 조직이다. 이 기구는 이오스 플랫폼의 헌법을 위반한 사례를 찾아내고, BP들에게 해킹당한 계정을 동결하도록 요청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갖고 있다. 이오시스(EOSYS)의 자료에 따르면 중재인은 EOS 분쟁 해결 규칙(RDR)에 따라 사건을 접수하고 진상을 규명한다.

그러나 이번 의혹은 ECAF가 진위를 판단하기 어렵다. 후오비 표 거래 의혹에 대한 심의가 시작되면 ECAF는 사건에 대한 근거를 모아야 한다. 이때 후오비와 여타 BP가 표 거래를 한 행위가 규칙에 어긋날 수 있다는 증거는 누가, 어떻게 제시할 수 있을까. 평소 사건을 검증할 때처럼 CCTV 영상, 거래 내역, 녹취 파일, 수색 결과 등으로 파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BP를 견제하는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오스 BP 후보인 이오시스(EOSYS)의 김홍욱 팀장은 “마치 국회의원은 선출했지만 국회가 없는 상태”라고 비유했다. 전 CSO는 “국가권력이 작동하지 않는 글로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종이 헌법은 무의미할 수 있다”며 “헌법을 코드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많은 권한을 가진 BP를 시스템 단위에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공정하게 견제할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최초로 미국 헌법에 권력 분립을 명시하는 장면. (image : wikimedia)

◆ EOS 거버넌스, 커뮤니티 참여 끌어낼 수 있어야

이오스는 ‘중앙집권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오스 측은 이에 대한 반론의 근거로 ‘투표’를 거론했다. 토큰 소유자들이 커뮤니티에 피해를 준 BP를 투표로 끌어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두 가지 의문점은 이오스 토큰 소유자들의 투표만으로 BP를 견제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들게 한다.

그렇다면 이오스 거버넌스는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대리 투표(proxy)’를 떠올릴 수 있다. 권 센터장은 “BP의 활동을 전문적으로 감독하고 평가하는 ‘변화를 위한 투표(vote for change)’와 같은 대리 투표 체제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개인 토큰 소유자들이 접할 수 있는 정보의 양과 질에 한계가 있다”며 “이런 대리 투표 장치가 정화작용을 가져올 것”이라 내다봤다.

비슷한 맥락에서 아크로 EOS 변 이사는 “거버넌스 구조가 개선되기 위해 커뮤니티 교육이 필요하다”며 “이를 통해 정보와 지식 격차를 줄여 거버넌스 참여를 독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투표 제도 자체를 손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라이즈의 최 대표는 “(‘좋아요’를 받은 만큼 토큰을 받는) 스팀잇도 자본을 많이 가진 고래가 똑같은 문제를 가져왔다”며 “개개인의 작은 표를 통해 BP가 선정되는 방향으로 투표 제도를 건강하게 개선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블록원을 포함해 이번 문제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는 이오스 얼라이언스도 등장했다. (image : medium)

김 팀장는 “특정 제도에 대한 논의 및 제정을 하는 시스템 자체가 부재하다”며 “이오스 거버넌스 시스템이 서둘러 구축되는 게 관건”이라고 언급했다. 개별 분쟁을 해결하는 채널뿐 아니라 전체 구조를 가다듬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말이 이어졌다.

이오스 첫 메인넷을 타산지석으로 삼는 이들도 눈에 띈다. 이오스 댑 개발사 아이텀게임즈의 정세현 매니저는 “설령 지금의 이오스가 망하더라도 킬러앱이 나온다면 (이를 필두로) 멀티버스를 만들거나 다른 플랫폼을 활용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오스 코드를 차용한 GXC의 김웅겸 대표는 “현재 이오스는 블록 생성자에 이득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며 “앱 개발사와 사용자들의 참여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으면 실험은 실험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