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거래소 어벤져스 제3부 : 누가 코인원을 만들었나

이번 특집에서는 국내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로 꼽히는 코빗, 빗썸, 코인원, 업비트와 관련된 이야기를 다룬다. 구체적으로는 국내 주요 거래소의 1) 배경정보 2) 거래 서비스 3) 금융상품 4) 기타 서비스 5) 보안 및 배상 6) 고객 서비스로 구성되며 이를 통해 각 거래소의 면면을 비교해보고자 한다.

지난 2부에서는 국내 암호화폐 거래량 2위(코인마켓캡 기준)인 빗썸을 만든 사람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3부에서는 국내 암호화폐 거래량 3위인 코인원을 만든 사람들이 누구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지금부터  제3부 코인원을 시작한다.

2014년 8월 설립된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원은 자사의 상징색으로 파란색을 내세우며 시장에 처음 등장했다. 이후 빗썸의 주황색과  대조적인 이미지를 만들며 차츰 자신의 영역을 넓혀나가는 중이다. 현재 코인원은 거래소 사업뿐 아니라 결제와 송금 영역으로도 서비스를 확장했다. 감자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만들었던 거래소가 4년이 지난 현재일일거래량이 667억 원이 넘는 대형 거래소로 성장했다

차명훈 대표는 포항공대 재학 시절 같은 과 친구들과 함께 코인원을 설립했다.그는 2009년 세계적인 해킹 대회인 데프콘(DEFCON CTF)에서 3등을 수상할 만큼 ‘IT보안’분야에서 실력을 보였다. 그러다 비트코인 가격에 붐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차 대표는 코인원을 설립하기 전인 2013년경 먼저 설립된 거래소들의 서비스 수준이 낮은 걸 보고 자신이 기술력으로 충분히 따라 잡을 수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작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창업 멤버인 학교 후배들과 라면과 감자를 먹으며 버텨야 하기도 했다.  그렇게 거래소 설립에 심혈을 기울이던 어느 날  세계적인으로 규모의가 상당했던 거래소가 해킹 당하는 사건이 터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암호화폐 거래소의 보안 문제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코인원 팀(당시 이름은 디바인랩)은 거래소 서비스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케이큐브벤처스(VC)에 찾아갔다. 한 달도 안 돼 2억 원의 투자금을 받을 수 있었다. 차명훈 대표는 “라면과 감자를 벗어날 수 있는 계기였다”라며 당시를회상했다.

차 대표는 자신의 주특기인 보안 기술을 십분 활용해 다중 서명지갑을 도입했다. 다중서명지갑은 사용자에게 3개의 ‘암호화 키’를 제공해 암호화폐 거래 간 해킹에 노출될 위험을 낮추는 보안 장치였다. 이는 당시 국내 거래소 최초로 도입된 기술이었으며 차 대표 스스로도 자부하는 영역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코인원의 자금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1년간 수익이 거의 나지 않았던 것이다.  거래소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적다보니 코인원은 다시금 자금 부족에 빠지게 되었다. 난관을 타개할 뾰족한 수가 필요했다. 그러던 중 만난 곳이 옐로금융그룹(현 데일리금융 그룹)이었다.

옐로금융그룹은 비트코인을 활용한 글로벌 송금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인수개념으로 코인원 지분을 스왑했다. 덕분에 7억 원을 추가로 투자받게 되었다. 그래도 자금적으로 숨통이 트인 것뿐이지 딱히 돌파구를 마련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결국 고심 끝에 ‘한 수’를 생각해내었다.

국내 최초로 ‘이더(Ether)’를 상장한 것이었다. 이 전략은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코인원의 성장기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고 평가된다. 또한 고객들의 이더리움 클래식(ETC) 지원요구에 응답하여 이더리움 클래식을 이용자 개인지갑으로 넣어주기로 전격 결정하기도 했다. 고객들의 요구에 반응하면서 코인원은 다시 이슈화가 되었다.

현재는 데일리금융이 코인원 지분의 75%를 가지고 있다. 지난해 데일리 금융 그룹이 벤처기업 연합체인 옐로모바일에 인수되면서, 코인원은 옐로 모바일의 손자회사가 되었다. 즉, 코인원의 최대주주는 옐로모바일이 되었다.

제4부 ‘업비트’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