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차움 – Deconomy 2018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 -고대 명언

암호화폐의 발명가, 익명 통신의 아버지, 사이버펑크 운동가, 암호학 컴퓨터 공학자… 데이비드 차움(David Chaum)은 오늘의 분산 경제에 기여한 ‘거인’ 중 한 사람이다. 어쩌면 인터넷 프라이버시 철학의 기초를 닦아준 한 사람이지만, 대중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이다.

시대를 앞선 살아있는 전설

데이비드 차움의 업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십 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80년대 대중에게 ‘컴퓨터’는 아직 생소한 단어였고, ‘인터넷’이라는 개념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1980년대 초반에 데이비드 차움은 약 15년에서 20년 후 인터넷의 발달로 발생할 사회적 문제에 대해 이미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인터넷과 컴퓨터의 상용화로 정부와 대기업 같은 거대 기관들이 개인의 모든 정보를 추적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상황에 대해 우려했다. 데이비드 차움은 이런 기관들이 인터넷과 같은 네트워크를 통해 각 개인과 관련된 데이터를 모으고, 추적해지는 것이 가능해지면 각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차움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암호학을 컴퓨터공학에 적용하는 방법을 연구해왔다. 그가 1981년 공개한 ‘추적 불가 전자 메일, 주소 그리고 디지털 익명성’ 논문은 오늘날 ‘익명 통신’의 초석이 되었다.

데이비드 차움은 “프라이버시는 인간성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있다.”라고 말하며, “‘프라이버시’라는 단어는 흔히 범죄와 비밀을 떠올리게 하지만, 프라이버시는 현대 사회에서 민주주의 사상의 핵심 원리를 지키고, 유지하는데 매우 핵심적인 개념이다.”라고 강조했다.

이후, 데이비드 차움의 사상은 ‘사이버펑크(Cypherpunk)’ 문화의 핵심으로 자리 잡게 된다.

사이버펑크 운동

사이버펑크는 암호학의 진보와 프라이버시 보호의 대중화가 사회적, 정치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킨다고 믿는 사람들로 구성된 자유주의 운동이다.

사이버펑크는 198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했으며, 당시 정보기관과 군대에서나 이용되던 암호학을 대중화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데이비드 차움이 1985년에 발표한 ‘신분 없는 보안: 빅브라더를 이기는 방법’ 논문은 사이버펑크 운동을 가능하게 만든 기술적인 기반 중 하나로 손꼽힌다.

점차 더 많은 사람들이 사이버펑크의 사상에 공감하고, 동의함에 따라 지속적으로 성장해온 사이버펑크 운동은 90년대 소속 회원들끼리 뉴스 및 관련 소식을 이메일을 통해 주고받으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사이버펑크는 하나의 운동에서 점차 하나의 ‘집단’의 모습을 갖춰갔으며, 이메일을 통해 정책, 철학, 기술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다양한 논의가 이뤄졌다. 이메일을 통해 이뤄진 수많은 논의들은 인터넷과 탈중앙화 그리고 보안에 대한 개념 정립 및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네트워크 상의 자유와 프라이버시 보호’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시작된 사이버펑크 운동은 다양한 문화, 기술 그리고 사상이 자라나는 하나의 거대한 사상적 토양이 됐다.

디지털 화폐

데이비드 차움이 개발한 핵심 기술 중 하나가 은닉 서명(Blind Signature) 기술이다. 그가 1983년에 발표한 “추적이 불가능한 결제를 위한 은닉 서명” 논문은 거래 당사자의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고 결제 사실을 검증하는 기술에 대해 다룬다. 그가 개발하고 제안한 디지털 서명 기술과 암호학 관련 개념들은 암호화폐의 근간을 이루는 기술로 발전했다.

이후 데이비드 차움은 세계 최초로 암호학이 적용된 익명성  있는 디지털 화폐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990년 그는 디지털 화폐 회사 ‘디지캐시(DigiCash)’를 설립했으며, 디지캐시는 디지털화된 달러에 고유한 해시(Hash) 값을 붙여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암호화폐 ‘이캐시(Ecash)’를 출시했다.

이캐시는 은행이 모든 거래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신용카드와 달리, 거래 내역을 제3자가 알 수 없는 익명성을 보장했다.

1994년 디지캐시는 이캐시를 사용한 첫 전자 결제에 성공했다. 1995년 디지캐시는 미국의 소규모 은행과 파트너십을 맺고 이캐시 디지털 화폐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계 최초로 개발된 암호화폐인 이캐시는 인터넷 전자상거래가 조금씩 활성화됐음에도 불구하고, 프라이버시 보호보다는 더 편리하고, 보편화된 신용 카드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에게 외면받았다.

결국 대중화에 실패한 디지캐시는 1998년 파산을 선언했고, 차움은 디지캐시사를 떠났다. 디지캐시가 이캐시 결제를 지원한 3년 동안 약 5,000명의 소비자들이 이캐시를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비드 차움은 “인터넷이 급격하게 보편화되면서 인터넷 사용자들의 기술적 이해도가 급격하게 낮아졌다. 이들에게 인터넷과 같은 열린 네트워크에서 프라이버시 보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디지캐시는 시대를 너무 앞서가 대중에게 외면받은 것으로 보인다.

위대한 유산

비록 디지캐시는 암호화폐의 대중화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세계 최초 암호화폐’인 이캐시가 남긴 유산은 오늘날 블록체인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데이비드 차움이 고안한 디지털 암호학 기술은 중앙화된 기관이 제공하는 ‘신뢰’ 없이 합의 알고리즘과 경제적 원리를 바탕으로 ‘누구나 참여 가능한 신뢰할 수 있는 블록체인 시스템’ 구성하는 핵심 원리 중 하나이다.

또한 최근 몇 년간 정부 기관들의 인터넷을 통한 대중 감시가 이슈가 되면서 이미 30년 전부터 오픈된 네트워크 상에서 개인 프라이버시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해온 그의 주장에 이제는 귀를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암호화폐의 기술적 발전과 미래 사회에서 프라이버시의 중요성에 대한 선견지명을 봤을 때 데이비드 차움은 ‘시대를 앞서간 거인’이라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