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이 전부 아니다”…14년차 게임 제작자 조언은?

“블록체인 게임이라고 불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2일 서울 강남 커피숍에서 만난 픽셀매틱(Pixelmatic)의 제이슨 리 최고크리에이티브책임자(CCO)의 말이다. 리 CCO는 약 13년간 렐릭 엔터테인먼트(Relic Entertainment)에서 일했다. 올 4월 픽셀매틱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역사 기반 전략 게임 ‘에이지오브엠파이어4’의 디자인을 총괄했던 인물이다.

픽셀매틱은 2011년 상하이에 설립된 게임개발사다. 픽셀매틱의 샘슨 모우 대표가 비트코인 코어 개발사 블록스트림의 최고전략책임자(CSO)도 역임하면서 블록체인 업계에 이름을 알렸 다. 현재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증권형, 유틸리티 토큰을 모두 다루는 우주 공상과학(SF) 전략 게임(RTS) ‘인피니트 플릿(Infinite Fleet)’을 만드는 곳이다.

14년차에 접어든 그는 블록체인, 암호화폐를 통해서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어린 시절, 무거운 개인용 컴퓨터(PC)를 들고 한 집에 모여 친구들과 네트워크를 연결해 전략 게임을 했던 즐거움을 새로운 기술을 통해 공유하겠다는 포부다. 다만 기술은 어디까지 게임 플레이어에게 즐거운 게임 경험을 줄 수 있는 장치라는 점도 강조했다. 이런 맥락에서 시중에 있는 블록체인 게임이 아쉽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블록인프레스는 리 CCO로부터 인공지능(AI)과 블록체인 같은 신기술을 게임에 접목하는 방식, 토큰을 활용한 가상경제에 기대하는 바, 픽셀매틱의 앞으로 계획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Q.먼저 현재 준비 중인 ‘인피니트 플릿’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예고편을 보니 긴장감이 있는 SF 애니메이션 같았어요.

-인피니트 플릿은 고전적인 전략게임인 스타크래프트와 비슷합니다. 스타크래프트가 굉장히 빠른 조작을 해야 한다면 인피니트 플릿은 그렇지 않다는 게 차이점이겠네요.

아무래도 분당 액션(Action per minute)이 많은 게임의 경우 게임 속의 콘텐츠를 제대로 느끼기 어렵습니다. 저도 나이가 드니 빨리 클릭하는 게 더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누구든 게임 콘텐츠를 느낄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자 합니다. 전략은 스타크래프트만큼 다양하지만, 컨트롤 면에선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에 가까운 방향으로요. 

(영상 출처 : 인피니트 플릿)

아직 게임 줄거리를 다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개괄적으로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합니다. 우주 여러 행성에 사람들이 흩어져 삽니다. 계속 이렇게 세를 확장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우주인이 지구인 출신들을 공격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예고편은 여기까지 공개했습니다. 앞으로 영상 콘텐츠를 통해 계속 ‘왜?’라는 질문을 밝혀나갈 겁니다.

Q.블록체인, 암호화폐, 인공지능 등 여러 신기술을 게임에서 어떻게 활용할 계획인가요?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함대 장군(commander)입니다. 그 아래로 부하와 여러 우주선이 배치됩니다. 플레이어가 이것저것 지시를 내리겠죠. 이때 신경망을 활용한 AI를 통해 부하들이 점점 전략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자주 지시하는 작전이 있다면 부하들이 이를 더 빠르게 배워 실행하는 식입니다.

보통 게임에서 레벨이 올라가면 강해진다고 생각하잖아요. 인피니트 플릿에선 게임을 진행할수록 팀이 똑똑해지는 겁니다. 처음에는 말귀를 못 알아들을 수 있어요. (이 NPC 유닛을) 가르치면서 똑똑해지게 하는 플레이에요.

블록체인은 두 가지로 쓰입니다. 먼저 토큰이코노미. 그리고 타임스탬핑(시간 기록) 기능입니다. 예컨대 제가 게임 내에서 우주선을 산다면 우주선 주인이 누구인지 기록이 남을 수 있습니다. 제가 남에게 다시 그 우주선을 판다면 ‘과거 누가 주인이었다’는 기록도 남고요. 

만약 제가 좋아하는 게임 스트리머가 갖고 있던 우주선을 사고 싶다면 그 내역을 확인할 수 있겠죠. 마치 박지성과 같은 유명 축구선수의 옷을 소장하고 싶을 때 그 사실 자체, 사실에 대한 기록과 확인이 중요한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저희 게임은 ‘블록체인 게임’은 아니랍니다. 블록체인 분야에서도 여러 분위가 있잖아요. 게임 경험을 개선해주는 부분만 이 기술을 적용하려고 해요. 블록체인에 게임을 어떻게든 집어넣으려는 건 아니에요.

(게임에 적용되는 인공지능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는 픽셀매틱 최고기술책임자 인터뷰. 영상 출처 : 인피니트 플릿)

Q.’블록체인 게임은 아니다’라고 강조하는 게 흥미롭네요. 블록체인 게임에 대한 의견을 더 들려주세요.

가장 대표적인 블록체인 게임으로 크립토키티가 처음 만들어졌어요. 가상의 고양이를 사서 교배할 수 있고, 랜덤으로 고양이 사이에서 고양이가 태어나 이를 비싸게 분양하는 게임이에요.

제가 생각하는 게임의 범주에서 이 방식을 게임이라 보긴 어려워요. 게임은 (플레이어 간의) 갈등과 상호작용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부류의 게임은 돈을 지불해서 무언가 모으거나 사고파는 데 그치는 듯해요. 그게 ‘블록체인 게임’이라면 인피니트 플릿은 그걸 지향하진 않을 듯해요.

추가로 더 의견을 말하자면 일단, ‘먼저 게임을 해보자’는 점이에요.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 후에 블록체인에 관해서도 공부해야 해요. 블록체인의 어떤 지점이 우리 게임에 좋은 경험을 줄 수 있는지 추출해 접목하는 게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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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그렇다면 블록체인을 게임에 적용했을 때 플레이어에게 좋은 점은 무엇일까요?

플레이어 입장에선 토큰이코노미가 유용할 것이라고 봅니다. 게임 내에서 이벤트 등에 참여해 받는 INF 토큰을 게임에서 내가 보낸 시간이에요. 이걸 모아서 우주선을 사고, 그걸 다른 플레이어에게 팔아서 INF를 더 벌 수도 있어요.

나중에 이 게임에서 나가고 싶다면 거래 플랫폼 등에서 다른 사람에게 팔 수도 있는 유틸리티 토큰이에요. 이때 플레이어는 자기가 게임에 쏟은 시간을 돈으로 돌려받을 수 있는 거죠. 

반대로 이 토큰을 산 사람은 새로운 유입으로 게임에 들어올 수 있고요. 증권형 토큰과는 구분돼요. 증권형 토큰은 말 그대로 게임에 대한 주식(stock)이에요. 회사 지분과 동일하게 배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영상 출처 : 인피니트 플릿)

Q.화제를 바꿔보죠. 엔씨소프트에서도 게임에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두 화두가 함께 거론되는 추세입니다.

-이때 조심해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예전에 인공지능과 겨루는 스타크래프트 경기가 있었잖아요. 당시 인공지능의 목표는 ‘무조건 이기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게임의 목표는 플레이어들이 더 즐겁게 게임을 하도록 지원하는 거예요. 

그래서 인공지능에도 도전 과제(challenge)를 거는 게 중요합니다. 반드시 이기려는 게 아니라 플레이어와 ‘밀당’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내부에서도 이 주제로 많은 논의를 해요. 엔지니어는 인공지능을 키우고자 하고, 저는 그 강도를 조절할 여지가 있어야 한다고 제안하곤 해요.

(최근 모바일 게임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자동 플레이 모드보단 AI 강아지를 키우는 것에 더 가깝다고 이해하면 편합니다. 처음에는 부하들이 제 말대로 움직이지 않다가 지속해서 플레이할수록 함선들이 더 원활하게 자리 잡고, 빠르게 진입해 어떤 공격을 써야 하는지 판단하게 돼요. 10가지 행동 중 괜찮은 하나를 뽑아 그걸 다시 10번 가르치는 반복 학습이죠.

Q.모우 대표가 인터뷰에서 ‘e스포츠와 결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어요. 이 대목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당연히 e스포츠와 시너지를 낼 수 있다면 좋죠. 저희는 언제든지 준비돼있어요. 플레이어가 함께 겨루는 대회를 하는 걸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한다면 옵저버(관찰자) 모드 등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먼저 게임 팬들이 이걸 원해야지만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게임에선 플레이어가 이끄는 내러티브 자체도 중시하고 있고요. 리니지에서 영감을 받은 지점인데요. 길드가 모여서 성을 공격하는 것처럼 인피니트 플릿 내 우주정거장에 플레이어들이 미션을 받으러 모여요. 지역별 정거장에서 장군들끼리 교류하고, 공통의 목표를 발견하는 그림이에요.

<기동전사 건담>과 같은 8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게임을 오마주한 ‘인피니트 플릿’의 컨셉 이미지. (출처 : 픽셀매틱)

게임 내 이벤트도 실시간으로 발생하고 없어질 계획이에요. 플레이어는 본인이 원하는 게임 경험을 만들기 위해 소셜 그룹을 만들어 협업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플레이어를 위해 전지적 시점보단 제삼자 시점으로 게임을 할 수 있도록 디자인할 거고요. 대개 전략 게임들은 전체 맵을 통으로 보는 화면이 주를 이루지만, SF 게임에는 우주를 날아다니는 판타지가 존재하잖아요. 영화 <스타워즈>처럼 플레이어가 전략을 실행한 후 그 전장을 누비는, 구경하는 것도 흥미롭도록 구성하려 합니다.

Q.픽셀매틱의 앞으로 계획을 들려주세요.

내년 2월까지 모든 컨셉이 확정돼서 전 제작(pre-production) 단계로 들어가요. 2020년 연말에는 플레이어 데모가 가능한 알파 버전이 나오고요. 정식 출시는 그 후로 생각하고 있어요.

(블록체인,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게임 트렌드는) 저희가 처음 시도해 이끌고 싶어요. 이 기술들을 활용하는 방향이 납득할 만하다고 생각해요. 과거 디아블로 때부터 게임 아이템을 이베이에서 팔았잖아요. 그걸 못하게 컨트롤하기보단 도리어 게임 안에 이 서비스를 집어넣는 게 어떨까요. 플레이어가 원하니까 해온 일일 테니 차라리 게임 경험으로 집어넣는 게 낫다고 봐요.

분명 유비소프트 등 유명 게임회사들도 이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다만 몸집이 큰 회사들은 리스크를 걸기 어려울 거고요. 픽셀매틱이 성공한다면 도전이 뒤따를 듯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토큰이코노미가 중요하다고 봐요. INF 토큰을 쓰는 게임이 더 늘어나서 그 가치가 올라가길 기대하고요. 장기적으로 스팀처럼 INF 토큰을 쓰는 플랫폼을 만드는 게 목표에요. 타 게임에서도 이 토큰을 활용해 크로스마케팅 효과도 가능하겠지 싶어요. 이 토큰을 기점으로 처음 접하는 게임을 해보는 식이죠.

썸네일 출처 : 블록인프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