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서 펼쳐진 ‘해커들의 축제’…4일만 탄생한 블록체인 아이디어는?

‘해커들의 축제’, ‘뇌로 달리는 마라톤’.

인터넷에 해커톤을 검색하면 나오는 말들이다. 하지만 앞서 몇번의 해커톤을 취재하고 참가하며 들었던 생각은 ‘축제’보다는 ‘전쟁’에 가까웠다. 밤을 꼴딱 세운 팀원들과 새벽까지 이어지는 아이디어 회의, 땅바닥 혹은 소파에서 잠이 든 참가자들. 

오죽했으면 첫 해커톤 체험기에서 ‘도망가고 싶다’고 글을 시작했을까.

하지만 이번에 제주도에서 진행된 제주 블록체인 해커톤은 기자의 이런 생각을 완전히 반전시켰다. 해커톤을 왜 ‘해커들의 축제’라고 부르는지 실감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차이는 ‘시간적 여유’와 ‘환경’에서 비롯됐노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몇 번의 해커톤을 참가한 후 해커톤과 멀어진 일상을 지내던 어느 날, “기자님 *클레이튼에서 진행하는 제주 블록체인 해커톤에 분산 신원 증명(DID.Decentralized Identity) 관련 프로젝트로 같이 나가보실 생각 없으세요?”라는 한 통의 메시지가 왔다. 

*클레이튼 : 카카오의 블록체인 기술 계열사 그라운드X의 블록체인 플랫폼

해커톤 체험기를 써보기도 했고 더이상 해커톤은 본인과 관련이 없는 일이라 생각하던 중에 받은 제안이라 참가가 망설여졌다.

 하지만 평화의 섬 ‘제주’와 이제껏 비앱 개발 과정을 직접 볼 수 없었던 ‘클레이튼’이라는 주제에 호기심이 당겼다. 또한 최근 떠오르는 이슈인 DID도 큰 흥미를 끌었다.

11월 7일부터 10일까지 3박 4일의 일정으로 진행되고 주말을 통째로 반납해야 한다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제주도’ 아닌가. 

W360 창가에서 바라 본 제주도 풍경

해커톤이 진행된 장소는 제주 원도심에 위치한 옛 기상청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W360’. 제주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블록체인과 빅데이터 등 데이터 관련 스타트업을 유치하기 위해 만든 곳이었다. 이번 해커톤 참가자들은 공식 개소식이 열리기 전인 W360의 첫 손님이었던 것.

그냥 제주도에 와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막상 W360에 도착해서 둘러보니 제주시내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전경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바다뿐 아니라 해커톤 장소 곳곳에 놓여있는 귀여운 카카오프렌즈 캐릭터 인형들도 절로 공간에 대한 애정을 샘솟게 했다. 아이디어 회의, 혹은 개발을 하다가 힐링이 필요한 참가자들은 종종 인형들과 함께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W360에서 진행된 제주 블록체인 해커톤

해커톤에 참여한 사람들은 총 44명, 11개 팀으로 대학생부터 직장 동료, 오랜 기간 현업에서 뛰었던 개발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제주도에서 진행되는 해커톤인 만큼 DID 기반 운전면허 대리인증 서비스(케이비케이비), 운행 데이터 기반 맞춤형 자동차 보험 서비스(프루퍼테크), 블록체인 기반 공유 킥보드 일회성 보험(소문도났제주), 숙박예약과 시설물 제어 시스템(비오비), DID기반 구인구직 서비스(V4A), 제주 감귤선과장의 노동력 확보 위한 구인·근태 관리 플랫폼(귤가다). 

그리고 제주도 여행자 원패스 서비스(키스미), 도내 축산폐기물 자동측정 시스템 활용 수질 관리 서비스(비해피), 반려견 등록 서비스를 통한 유기견 방지 방안(댕댕이가 제주부린다), 친환경 제품 쇼핑 플랫폼(에코그라운드), 플라스틱 제품 추적시스템(플라스틱 아일랜드)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중에서도 블록체인을 기반으로한 공유 킥보드 일회성 보험과 반려견 등록 서비스는 평소에 쉽게 인지하지 못했던 문제를 건드린 아이디어였기에 더욱 눈길이 갔다. 

많은 이들이 문제 인식은 하지만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몰랐던 그런 주제들에 대해 통쾌한 솔루션을 제안해 실제 서비스가 생겼을 때 블록체인 산업 바깥의 사람들도 쉽게 손이 갈 수 있는 서비스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문났제주 팀의 데모 시연

그렇다면 아이디어만 좋았냐, 구현된 데모 버전 또한 정말 멋졌다. 특히 대부분의 해커톤이 1박 2일, 2박 3일에서 그치는 데에 반해 이번 제주 블록체인 해커톤에는 3박 4일이라는 꽤 긴 시간이 주어졌는데, 확실히 긴 시간만큼 프로젝트들의 완성도 또한 남달랐다.

일례로 블록체인 기반 공유 킥보드 일회성 보험 아이디어를 기획한 소문도났제주 팀은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착용 등 안전 기여 행위에 대한 보상을 주기위해 카메라로 이용자의 헬멧 착용 여부를 감지하는 서비스를 내놓았다.

실제로 헬멧을 착용하지 않으니 이를 인식했고, 머리에 쓰지 않고 헬멧을 들기만 했더니 여전히 착용하지 않았음을 정확히 인식했다. 

해커톤 용 웹 데모 버전을 넘어 애플리케이션까지 개발한 팀이 여럿 있었는데 같은 팀 디자이너는 데모 시연 현장을 둘러본 후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네요”라고 감탄하기도 했다.

이렇게 멋진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구현할 수 있는 청년들이 많다니! 정말 미래가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시스템의 완성도가 정말 높아서 데모 버전을 봤을 때, 이건 지금 상용화해도 사람들한테 먹힐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드는 프로젝트들이 보였다. 소위 말해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손이 갈 수 있는’ 서비스가 많이 보였다. 

댕댕이가 제주부린다 팀 데모 시연

쟁쟁한 아이디어들 가운데 최우수상은 ‘댕댕이가 제주 부린다’팀이, 우수상은 ‘소문도났제주’팀과 ‘키스미’팀이 차지했다. 그리고 모두 데모 시연 때 실제로 필요한 서비스라는 생각이 들었던 아이디어를 낸 팀들이었다. 블록체인의 상용화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클레이튼과 가장 잘 어울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클레이튼 위에 올라가는 비앱을 개발할 땐 기존 블록체인 플랫폼에서 서비스를 개발할 때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해커톤에 참여한 한 개발자는 클레이튼이 이더리움의 포크를 따서 합의 알고리즘을 바꾸고 다른 환경은 비슷한 구조이기 때문에 평소 블록체인 해커톤을 참가 했던 개발자들에게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평했다. 또한 운영 비용 면에서 확장성, 반응성 등에서의 이점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블록체인 개발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 팀도 있었다. 이들은 해커톤의 멘토들이 옆에서 끝까지 책임지고 설명을 해줘 개발을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멘토 역할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확인 되는 순간이었다. 

참가자들의 발표를 경청하는 해커톤 심사위원들(출처 =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또한 인상 깊었던 것은 해커톤 최종 순위를 발표 때, 제주도 한영수 미래전략과장이 순위 발표에 앞서 한 팀 한 팀 호명하며 이 팀의 아이디어는 어떤 점이 좋았고, 어떤 부분을 참고하면 더 나아질 수 있을지 팀에서 놓치고 있던 현실적인 부분들을 짚어주며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준 것이었다. 

며칠간 자신의 시간을 쏟아 부었던 프로젝트가 1등 혹은 많게는 3등 안에 호명되지 못했을 때, 어떤 부분에서 부족한 것인지 알지 못한 채로 짐을 싸고 돌아갈 때 오는 허무함이 있기 때문이다. 설령 수상을 기대하지 않고 참여했더라도 말이다. 

각 팀에 전해준 조언으로 주최 측의 참가자들의 배려심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3박 4일이 준 완성도는 단순히 더 많은 시간이 주어졌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에서 주어지는 ‘여유’, ‘휴식’ 그리고 ‘환경’, 이것이 이번 해커톤의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제주 블록체인 해커톤에 참가한 전체 참가자들(출처 = 제주 창조경제혁신센터)

사실 해커톤은 똑같은 해커톤이었다. 밤을 지새기도 하고 새벽까지 회의를 하기도 하고. 하지만 달랐던 것은 ‘환경’과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을 제대로 지원해주는 ‘복지’였다. 그래서 일전에 여러 해커톤을 참가해봤던 한 참가자는 “신경을 많이 쓴 해커톤이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휴식이 주는 생산성의 힘은 꽤나 컸고 환경이 주는 리프레시(Refresh)의 힘은 심히 엄청났다.  

푸르른 가을 하늘 아래 반짝이는 제주도 바다보다 더 밝게 빛났던 아이디어들. 제주에서 만난 해커톤은 좋은 환경과 여유가 주는 미학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줬다.

썸네일 출처 : 블록인프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