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바꿔놓은 축제 ‘버닝맨’…전세계 8만 위한 블록체인 도시로

[노드원 류한석 대표] 버닝맨은 1987년 샌프란시스코의 한 해변에서 인간의 형상을 딴 목조 인형을 태우는 일종의 축제로 시작했다. 하지만 버닝맨에 다녀온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버닝맨은 축제가 아니라고. 30여 년이 지나면서 오늘날 버닝맨은 전 세계에서 모여든 8만여 명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축제 이상의 그 무엇이 됐다.

예를 들면 이렇다.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은 라인업을 기대하고, 어떤 밴드의 어떤 곡을 들을지 기대하며 참석한다. 무대 위에서 돈을 받고 연주를 하는 밴드와 돈을 지불하는 소비자로서의 관객이 구분돼 있다. 기대치가 정확하게 주어져 있다. 

버닝맨에서는 그런 도식이 적용되지 않는다. 버닝맨은 페스티벌이 아니라 도시이기 때문이다.

버닝맨의 개최지는 실제로 지도상 ‘블랙 락 시티(Black Rock City)’라고 표기된다. 매년 8월 마지막 주 주말부터 네바다 사막 한 가운데에 열흘 남짓한 시간 동안 신기루처럼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지는 인구 8만 명의 임시도시 블랙 락 시티에서는 누구를 만나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어떤 해프닝이 벌어질 지 아무도 모른다.

버닝맨, 축제 아닌 도시

그 곳에는 모든 사람들이 따르는 십계명이 있다. ‘표현하고 싶은대로 가장 자기다운 모습을 표현할 것’(Radical Self Expression), ‘자신의 생존은 스스로 책임질 것’(Radical Self Reliance), ‘선물 경제(Gift Economy)’ 따위가 그것이다. 마술은 도시를 구성하는 8만 명이 모두 이 십계명을 지키고 있는 데서 발생한다. 

아무런 생명도 살아남을 수 없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마실 물, 먹을 음식, 입을 것, 잘 것 등 모든 것을 스스로 챙겨야 한다. 일부 얼음이나 커피를 살 때를 제외하고는 돈은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물물교환도 통용되지 않는다. 참가자들은 자기 자신의 생존을 책임지되, 남는 것은 필요한 사람에게 선물할 수 있을 뿐이다. 내게 부족한 것은 누군가가 선물해준다. 선물하기 위해 거창한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다못해 친절한 미소마저도 선물이 될 수 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열 명 중 한 명은 벌거벗고 다니지만, 전혀 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누구의 몸도 완벽하지 않지만, 이를 두고 아무도 이상한 시선을 보내거나 재단하지 않는다. 차라리 자연스럽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 보인 것일 뿐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가족. 딸 비스킷(좌측)은 3년째 버닝맨에 참여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노드원)

사건 사고가 일어난다. 우연히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의 우연한 인연이 새로운 배움과 기회로 이어진다. 공동체에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참여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데서 충만함을 느낀다. 개개인의 개성이 존중되고, 그러한 개성의 표현이 타인에게 선물로 다가간다. 

자기다움을 마음껏 내뿜는 8만 명이 가장 자기다운 모습으로 공동체에 기여할 때 공동체는 새로운 경지에 다다른다. 버닝맨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플라야에서 모두 자기 자신이 작품이자 관객이 된다. 초월한다. 버닝맨 가운데에 있는 광장 플라야를 심지어 ‘신성하다(sacred)’고까지 하는 이유다.

이런 버닝맨의 문화는 참여, 개방과 창조성, 자기조직, 공유, 혁신과 같은 실리콘밸리 문화와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커져 갔다. 실리콘밸리의 오픈소스 운동의 아이디어는 버닝맨의 개방형 협업에서 기원했다고도 한다. 

2010년대 후 전 세계 여러 나라 정부 및 지자체들이 끊임없이 실리콘밸리를 복제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 누구 하나 성공한 사례를 볼 수 없는 것은 실리콘밸리가 단지 ‘맛있는 밥이 제공되는 좋은 건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는 건물이 아니고 네트워크며 문화다. 기업가 정신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버닝맨은 두려움 없이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갖춘 사람들과 있는 그대로의 개성들이 안전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문화와 네트워크인 것이다.

이렇게까지 이야기한다면 그게 다 세상과 담 쌓고 지내는 아웃사이더들, 혹은 히피들의 축제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오산이다. 함께 주방에서 당근을 썰며 식사를 준비하던 사람이 알고보니 패리티 지갑 해킹 사건을 복구하던 사람이라면, 공중 화장실 앞에서 휴지를 빌려주며 잠시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이 알고보니 비트고의 창립자 윌 오브라이언이라면, 밤새 춤추다 사막의 지평선에서 일출을 보는데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 레이 달리오라면 말이다. 

(올해 버닝맨 타임랩스 영상. 출처 : 버닝맨프로젝트)

버닝맨 기간 동안 실리콘밸리가 텅텅 빈다고들 한다. 버닝맨 참가자 8만 명이 현실 세계에서 움직이는 돈의 액수는 족히 수백조 원이 넘는다고도 한다. 인류 문명의 최첨단을 만들어 가는 그들이 모이는 곳, 타이틀과 계급장을 떼고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는 곳이 바로 버닝맨이다.

버닝맨에서 발견한 ‘블록체인’

필자가 버닝맨을 처음 다녀온 것은 2017년이었다. ‘일론 머스크가 참가를 하네’, ‘에릭 슈미트가 구글의 최고경영자(CEO)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버닝맨 참가자였기 때문이라네’, ‘다들 벌거벗고 다닌다네’ 등등 많은 이야기들을 들은지도 10년이 넘었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란 동양인 필자에겐 너무나도 급진적이고 전위적인 행사로만 느껴져 선뜻 마음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안식년을 취하며 쉬고 있던 필자의 등을 떠민 것은 버닝맨 한국 대사인 정신엽 씨다. 쉬고 있었던 만큼 ‘이때가 아니면 언제 가볼 수 있을까’하는 마음으로 행사 당일까지 2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아내와 함께 참여를 결정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열흘 동안 다녀온 버닝맨에서의 경험이 필자의 인생을 바꿔놓을 줄은 정말 몰랐다. 

예전부터 조직문화와 공동체, 코리빙, 코워킹 등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티에 관심이 많았던 필자에게 있어 2017년 버닝맨 참가는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누가 시켜서 무엇가를 하는 것이 아닌, 모두의 자발적 참여로 굴러가는 공동체가 정말로 가능하다는 것을 버닝맨에서 깨닫게 됐다. 그 커뮤니티를 가능하게 한 많은 사람들이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의 열정적 참여자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대체 블록체인이 뭐길래.

블록체인이 ‘커뮤니티’ 또는 ‘공동체’라는 주제와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파악한 필자는 블록체인이라는 것이 사실 기존 스타트업과는 무언가 다른 단순한 비즈니스를 뛰어넘는 그 무언가에 대한 것이며, 막연하게 앞으로 다가올 패러다임 시프트와 큰 관계가 있을 거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커리어의 다음 행보를 고민하고 있단 필자로서는 블록체인을 빠르게 배워보겠다는 일념으로 그 후 반 년을 두바이, 멕시코, 스위스, 홍콩, 미국 등지를 떠돌며 블록체인 컨퍼런스를 쫓아다니며 지냈다. 

그리하여 얻은 나름의 결론은 블록체인은 투기 광풍의 탈을 쓰고 나타난 사회경제시스템의 근본적 변혁이라는 것이었다. 블록체인은 근본적으로 결국은 공동체의 자기 조직을 위한 투표 툴이라는 것, 다시 말해 특정 공동체의 화폐 또는 지분에 대한 결정권을 특정 은행 등과 같은 누군가를 신뢰해 그에게 위임하는 대신, 그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의 투표를 통해 컨센서스로 합의하는 도구라는 점, 따라서 기존의 회사가 주주-직원-고객의 근원적인 이해관계 불일치 문제를 종식시킬 수 있는 도구라는 점이었다.

주주-고객-직원 관계또 변화. (이미지 출처 : 노드원)

세상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데다가 제법 괜찮은 돈도 벌 수 있는 판단에 바로 노드원이라는 회사를 창립했고, 당시 이오스 토큰 보유자들의 투표를 통해 블록 생산자를 선출하는 이오스 체인에 출마했다. 결론이 빨리 나는 실험이라고 생각했다. 지난해 6월 이오스 메인넷 론칭에서부터 참여해 몇 번의 고비를 거치며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버닝맨 첫 ‘토큰화된 탈중앙화 자율공동체’(DAO) 탄생

이오스 커뮤니티 안에는 한국에서 출마한 노드원뿐만 아니라 해외의 많은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이오스 생태계 안에서 게임을 만드는 팀들과 노드원처럼 블록 생산자로 일하는 팀들 등. 다양한 배경과 관점을 가지고 생태계에 기여하며 가치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었다. 

블록체인의 효시가 된 사이퍼펑크 문화의 많은 부분이 버닝맨 커뮤니티와도 겹쳐 있으니, 당연히 블록체인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버닝맨에 많은 관심이 있을 뿐만 아니라 실리콘밸리의 그런 문화를 동경하는 창업자로서도 버닝맨은 많은 이들에게 있어 모종의 꿈만 같은 곳이기도 했다.

이오스 커뮤니티 안에서 버닝맨에 가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확인한 필자는 지난 6월 초 2019년 버닝맨 행사에 함께 참여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그룹을 만들었다. 그룹은 점차 커졌고, 공동 참여 계획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버닝맨 안에 토큰화된 소규모 캠프를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개방과 공유, 자발적 참여의 문화를 대변하는 버닝맨에서 토큰화된 탈중앙화 자율 조직을 만든다는 것이 모두를 설레게 했다. 버닝맨 개최 시점이 8월 말이었으니 약 두 달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커뮤니티 내외의 주요 플레이어들의 기부를 통해 성공적으로 수천만 원을 펀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캠프다오닷컴(campDAO.com)이 출범했다.

매주 두 번씩 컨퍼런스 콜을 하며 참가자는 어떻게 정할지, 캠프 운영은 어떻게 할지를 논의했다. 실무를 책임질 7명의 대표단을 선출하고 ‘블록체인을 통한 그룹 캠프 운영 사례를 전파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버닝맨 안에 존재하는 수없이 많은 캠프들 가운데 블록체인을 주요 테마로 삼고 있는 캠프디센트럴과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이내 한국, 이스라엘, 미국, 우크라이나, 중국 출신의 1기 캠프다오(CampDAO) 참가단 16명이 구성됐다.

2년 전과의 경험과는 차원이 달랐다. 당시에는 필자와 아내가 개인 자격으로 아무런 연고도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참가하면서 맛을 본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전 세계 16명의 참가단을 이끌고 가게 된 것이었다. 어깨가 무거웠다.

버닝맨 공동식당. (이미지 출처 : 노드원)

행사는 8월 25일부터였지만 할 일이 많았다. 행사 한 주 전 미리 도착해 40도를 넘나드는 뙤약볕에서 CampDAO 멤버 16명을 포함한 캠프디센트럴 구성원 약 80명이 활동할 텐트를 올리고, 돔을 짓고, 발전기를 설치하고, 상하수도 시스템을 만들었다. 

버닝맨이 늘상 그렇듯 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발전기가 말썽을 일으키고, 모래 폭풍에 천막이 날아갔다. 늦게 도착하는 팀원을 위해 만들어둔 텐트에 새벽 사이 엉뚱한 사람이 입주해 정작 원래 텐트 주인이 숙소를 놓치는 말썽을 일으켰다. 명단에 없던 사람이 나타나 우리 캠프 소속이라고 우기는 경우도 생겼다. 해프닝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겉보기에 나쁜 일인 것만 같았던 일들이 결국은 한 편의 아름다운 이야기의 일부가 됐다는 점이다. 

모래 폭풍에 천막이 날아갔을 때에는 지나가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더니 날아간 천막을 주워오고 말뚝을 박고 원래보다 단단하게 천막을 설치하는 걸 도와주고는 가벼운 하이파이브와 포옹을 나누곤 떠나갔다. 선물이었다.

밤사이 엉뚱한 텐트에 입주했던 라파(Rafa)와는 언성을 높이는 대신 서로 어떤 오해가 있었는지 사정을 확인하고, 모자란 텐트 하나를 함께 설치해 문제를 해결했다. 늦게 왔던 텐트 주인이 함께 배려해 준 덕이다. 결국 남은 것은 서로의 배려심과 인내심에 대한 감사와 인간성에 대한 신뢰였다.

우리 캠프 명단에 없던 스비나(Svena)와는 문제를 해결한 뒤에도 어색함과 찜찜함이 남았으나,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당신과 함께 상황에 직면하면서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고, 그런 경험에 일부가 돼준 당신에게 감사한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보이지 않던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함께 캠프에 참가했던 이들은 제각기 예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자기들 만의 경험과 추억을 만들었다. 일주일 넘게 같은 캠프에서 동고동락하며 기존의 비즈니스 파트너 관계를 뛰어넘은 우정을 쌓았다. 

두 번째 버닝맨 경험 역시 아름다운 난장판이었다.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한밤 중에 나눈 깊은 대화와 통찰,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뜻밖의 행운, 어두운 사막의 밤과 일출, 수없이 많은 태워질 예술작품들까지.

자발적 참여 문화 이끄는 기술, 블록체인

캠프다오와 캠프디센트럴에 속했던 많은 이들은 각기 다른 회사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었지만, 블록체인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믿음은 하나 같았다. 버닝맨은 자발적인 참여와 기여를 통해 탈중앙화된 자치 문화를 운영하는 공동체이며, 블록체인은 기존의 위계적 조직구조 없이 이를 현실세계 속에서 실질적으로 가능케해주는 기술적 툴이라는 믿음이다.

놀라운 것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단순한 히피가 아니라, 능력과 자본과 기술과 열린 마음을 겸비한 업계의 내로라하는 실력자들이라는 점이다.

블록체인은 결국 공동체의 지분 소유 구조와 권력의 분산에 대한 것이다. 인간이 사회 공동체를 조직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는 도구이다.

세계는 저금리 기조를 뛰어넘어 마이너스 금리 시대로 치닫고 있다. 중미 무역분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현대통화이론(MMT)이 점차 고개를 들고 있다. 홍콩 사태를 통해 중국의 감시 공산주의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미국에서는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 애플로 대변되는 소위 GAFA를 통한 빅데이터와 감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한국에서 역시 마찬가지로 한일 무역분쟁이 조국 정국으로 이어지며 불확실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이번 버닝맨의 주제는 애벌레가 나비가 된다는 것, 즉 변태(Metamorphosis)였다. 모든 것이 패권과 권력에 대한 이야기다. 많은 이들이 한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는 변곡점에 마주쳐 있음을 예감하고 있다. 

썸네일 출처 : burningma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