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경제’가 몰려온다…4차산업vs판옵티콘 이분법, 실마리는

블록체인의 예언이 현실이 되고 있다.

데이터를 공유하고 거래하는 세상을 꿈꾸는 블록체인의 말처럼 데이터를 사고파는 시장이 점점 더 커지는 모습이다.  IT공룡들이 모여 사용자 데이터를 서로 다른 서비스로 옮기는 오픈소스 프로젝트도 진행되고 있다. 국내에선 기업 간 데이터 마켓을 상품권 형태로 중개하는 ‘데이터 바우처’ 지원사업도 한창 진행 중이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데이터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원유”라는 말을 직접 꺼냈던 것을 떠올리면 이를 더 실감하게 된다. 

이런 움직임에 대한 반작용도 블록체인이 예견한 바다. 당장 프라이버시 이슈가 두 눈 부릅뜨고 기다리고 있다. 대표적인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부터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까지 소위 ‘데이터경제 3법’ 개정안에 우려를 표현하고 있다. 더는 데이터마켓을 단순 산업의 논리로만 볼 수 없다는 의미다. “인터넷의 새 비즈니스 모델은 ‘고객 감시(Surveillance)'”라는 암호학자 브루스 슈나이어의 지적은 이미 현실이 됐다. 

이처럼 ‘데이터경제’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명분과 *’판옵티콘’이라는 그림자 사이에 놓여 있다. 블록체인 커뮤니티의 행보는 이 대립에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판옵티콘(Panopticon) : 영국 법학자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감옥 건축양식. 소수의 감시자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도 모든 수용자를 감시할 수 있는 형태의 수용소다. 

2014년 이더리움은 분산된 형태로 운영되는 ‘월드 컴퓨터’를 표방했다. 이후 블록체인 업계는 개인이 자기 정보를 마음껏 다룰 수 있는 데이터마켓뿐 아니라 그 기반을 어떻게 덜 독점적인 형태로 운영할지 고민해왔다. 블록체인이 “22세기 기술”이라는 우스개소리를 듣는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블록체인이 건넨 문제의식은 21세기에 곱씹어봄 직하다.

(올해 말 ‘오픈뱅킹’으로 금융 데이터를 핀테크 기업 일반에 공개하는 등 데이터를 기반으로 산업을 진흥하려는 모습이다. 영상 출처 : YTN)

#국내분위기 #데이터바우처 #개망신법 #첨예한대립

국내에선 올해 데이터 관련 정책이 급물살을 타는 분위기다. 지난해 판교 데이터센터에서 열린 <데이터 경제 활성화 규제혁신 현장> 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미래 산업의 원유는 바로 데이터”라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신산업, 신기술을 위해 데이터 규제혁신이 빠르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데이터 바우처’ 정부 지원 사업은 이 연장선에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올해 3차례 모집한 이 사업은 데이터 구매 및 가공 비용을 바우처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카드사가 개인을 특정할 수 없는 고객 데이터를 2차 가공해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이 주축이 된 ‘데이터스토어’에 올리면 위 사업을 통과한 수요기업이 데이터를 구매하는 구조다.    

실제로 데이터스토어에는 BC카드가 바우처상품으로 제공하는 ‘전국지역별 업종별 소비데이터’부터 다음소프트의 ‘소셜빅데이터에서 찾은 인사이트’까지 여러 종목의 데이터가 판매대에 올라있다. 광고 데이터 업계 관계자는 “데이터 공급기업과 수요기업 사이에 얼마나 니즈에 맞는 데이터를 적절히 매칭해줄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고 짚었다. 

(이미지 출처 : 데이터스토어)

입법처에선 데이터경제 3법 개정안으로 알려진 일명 ‘개망신법’이 도마 위에 올랐다. 개인정보보호법(행정안전부), 정보통신망법(과학기술정보통신부), 신용정보법(금융위원회)을 개정해 가명(假名)정보 활용, 데이터 이동권 등에 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자는 취지다. 이 법안들은 20대 국회 임기 안에 처리되지 못할 경우 자동 일괄 폐기된다.

그중 신용정보법(신정법) 개정안은 지난 14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심사될 것으로 기대됐다. 추가정보 없이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도록 처리한 개인신용정보를 가명정보로 간주해 통계작성, 연구, 공익적 기록 보존 등을 위해서는 이를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이용하거나 제공할 수 있게 하는 골자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개정안은 개인신용정보의 전송요구권, 자동화평가에 대한 신용정보주체의 설명요구권 등 새로운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도입 등을 통해 현행 제도의 운영상 미비점을 개선, 보완하는 것을 추구한다. 은행연합회를 비롯한 산업계는 신정법을 포함한 데이터경제 3법 개정안을 조속히 처리해달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신정법 개정안은 심사에 오르지 못했다. 아직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의결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해당 개정안에 대한 찬반이 절충안을 찾지 못하는 시점에 해당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은 이날 성명을 통해 “신정법이 개인정보보호 체계를 정리하지 못한 채 발의됐다는 점에서 국회 정무위원회 상정은 넌센스”라고 꼬집었다. 참여연대는 지난해부터 “(데이터 관련 개정안은)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소셜미디어를 사찰하는 식으로 표현의 자유 말살한다”며 “금융회사만 살찌우고 소비자는 착취하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인권위도 지난 22일 위원회를 열어 “개정안 내용 중 가명정보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관련된 사항이 국민의 정보인권 보호와 관련이 있다고 판단해 검토했다”며 “주민등록번호 제도로 전 국민 식별이 매우 용이한 점, 성명 및 주민번호 등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가 이미 대량으로 유출돼 음성적으로 거래되고 가명정보 재식별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큰 점 등을 고려할 때 타 선진국보다 정보주체의 보호와 안전장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든 의료 정보를 전산화해 개인이 동의한 데이터를 익명화, 연구 및 개발에 활용하는 핀란드 사례. 데이터 원천 권리는 정보주체에게 귀속된다. 영상 출처 : KBS)

#GDPR #데이터트랜스퍼 #CBDC #디지털인프라전쟁

해외에서도 데이터 관련 규제가 개인정보보호 강화, 데이터 이동권 및 가치 명시 의무 등 다각도로 논의되고 있다. 데이터를 활용하는 산업활동뿐 아니라 데이터 그 자체가 디지털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전제다. IT대기업들도 이런 규제 환경 변화에 미리 대응한다. 데이터가 자산으로서 자유로이 이동하는 미래에도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도다.

IT공룡들은 데이터 관련 규제를 미리 준비하고 있다. 지난달 애플은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MS), 트위터가 발족했던 데이터 트랜스퍼(data transfer) 프로젝트에 참가한다고 밝혔다. 이 오픈소스 프로젝트는 데이터 형태를 표준화해 사용자가 자기 데이터를 따로 내려받지 않고도 이를 타 서비스에 쉽게 이동시키는 구조를 목표로 한다.

에어블록의 김희연 사업개발 팀장은 “구글, 애플 등 거대 IT기업에서 데이터 트랜스퍼 프로젝트가 시작된다는 점에서 진전이 빠를 것으로 본다”며 “데이터 관련법이 강화하는 데 대해 선제적으로 대처하고, 데이터 공유를 통해 사용자 행동 및 관심사 데이터를 더 상세하게 확보하기 위한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IT공룡들의 행보는 개인의 데이터 이동권을 더 빠르게 수면 위로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데이터경제 법안은 해외에서 활발하게 등장하는 추세다. 예컨대 2018년 GDPR에 이어 2020년에는 캘리포니아 소비자 개인정보보호법(CCPA)가 시행된다. 해당 법안은 △연간 총 매출이 2500만 달러를 넘는 기업 중 △연간 수입의 50% 이상이 소비자 개인정보 판매에서 비롯되거나 △캘리포니아 소비자, 거주민, 기기로부터 5만 건 이상의 개인정보를 상업적인 목적에서 공유하거나 수집 및 판매해 수익을 내는 사업자에 소비자가 자신의 데이터 관련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지난 6월 글로벌 IT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민주당 소속 미국 마크 워너 상원의원은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 등 주요 플랫폼에 ‘고객 데이터의 가치를 공개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이 데이터를 고객이 다른 플랫폼으로 옮길 수 있도록 조치하는 규제 방안도 언급했다. 데이터경제에 논하기에 앞서 개인정보의 범주, 가명정보를 활용하는 절차 등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작업으로 읽힌다.

관련 기사 : [기자수첩] 블록체인에서 기회 찾는 미국 IT 시장, 그 이유를 만나다 

(GDPR에 대한 개괄 설명. 영상 출처 : 한국인터넷진흥원)

하지만 이런 시류가 여전히 ‘판옵티콘’을 우려하는 일각의 목소리를 안심시키기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미국 경제매체 블룸버그통신은 「온라인 프라이버시 규제 : GDPR이 유럽 웹 트래픽과 전자상거래 성과에 미친 초기 영향」이라는 논문을 인용해 “유럽발 웹사이트 페이지 조회 수 및 수입은 GDPR 시행 후 10% 감소했고, 전자상거래 사이트 평균 수익도 주당 8000달러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반면 구글이 2018년 3분기에서 2019년 1분기 유럽 시장에서 얻은 수익은 351억 달러였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5000만 유로 벌금을 냈지만, GDPR 발효 후 수익이 2017년 3분기부터 2018년 1분기 수익(299억 달러)보다 늘었다는 설명이다. 블룸버그는 “빅테크 기업의 법무팀에 비교하면 각국 개인정보보호 당국은 규모 면에서도 부족하다”며 “GDPR은 거인과 중소기업이 동등한 판에 있을 때만 유럽인의 프라이버시를 담당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암호화폐 전문 매체 코인텔레그래프에 따르면 멕시코 중앙은행 자비에 칼라펠(Javier Calafell) 부총재는 “완전히 익명성을 제공하지 못하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디자인은 일반 대중의 관심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든 기업이든 누군가 디지털 세상의 ‘기록’을 독점하려 한다면 대립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다. 

#블록체인 #감시자본주의 #암호화기술 #새로운도로깔기

이처럼 데이터경제는 새 패러다임으로 다가오고 있다. 산업혁명뿐 아니라 디스토피아도 수반한다. 지금 블록체인 커뮤니티가 바라보는 미래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이들은 분산화(Distribution)에 관심이 많다. 이는 구호에 그치지 않는다. 인터넷 속 기록을 기록하고 보관하는 방식, 개인이 데이터를 주고받는 구조, 그 과정을 암호화하는 기술에 대한 시행착오로 가득 차 있다.

앞서 브루스 슈나이더가 언급한 ‘고객 감시’는 올해 ‘감시 자본주의’라는 구절로 되살아났다. 블록체인 커뮤니티 공간 논스의 문영훈 대표는 블록인프레스와의 인터뷰에서 “쇼샤나 주보프 교수의 저서 <감시 자본주의>의 핵심은 구글, 페이스북 같은 회사가 우리 정보를 바탕으로 행동을 예측하고, 이를 상품화해서 파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감시 자본주의 시대에 개인의 주권과 자율성은 침해받을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결국 블록체인의 핵심 가치인 ‘권력의 분배’ 차원에서 기업, 국가 권력이 아닌 개인의 권리를 어떻게 지킬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제언이다. 

지난해 미국 벤처캐피탈 안데르센 호로비츠의 크리스 딕슨 파트너도 미국 IT매체 브레이커와의 인터뷰에서 “도심은 도로와 같은 공공재, 그 위에 사적으로 소유한 레스토랑도 있어서 레스토랑이 사람들이 다니는 공적 자산에 의존하는 형태”라며 “하지만 오늘날 인터넷 세상은 디즈니랜드에 가까워서 그 안에서 내 레스토랑 수완이 너무 좋아 보이면 디즈니가 임대료를 올리거나 정책을 바꿔버린다”고 진단했다. 

<비트코인 제국주의> 한중섭 저자는 “현금 자동충전보다 스타벅스 코인이 혜택을 더 많이 준다면 스타벅스 앱을 애용하는 고객은 코인을 쓰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며 “자신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많아질 테니, 개인에겐 (이런 변화가) 기능적으로는 더 편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정보주체의 데이터는 인프라를 쓰는 대가로 쥐도 새도 모르게 임대료처럼 개인정보를 내게 된다.

(지난 6월 열린 ‘비트코인2019’에 영상으로 참석한 전 미국 국가안보국 에드워드 스노든 요원은 “프라이버시가 비트코인을 쓰는 사람, 이 생태계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장치”라고 내다봤다. 영상 출처 : EBS)

지금 데이터경제라는 키워드를 둘러싼 진통은 블록체인 업계에서 이전부터 고민해온 숙제와 같다.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은 지난해 4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래디컬마켓(Radical Markets)’이라는 책을 소개했다. 개인정보를 판매하는 시장, 독점에 가까워 보이는 기존 금융권의 해체 등 논쟁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부제목은 ‘정당한 사회를 위한 자본주의, 민주주의 뿌리 뽑기’다.

부테린은 “이 책에 나오는 경제적 아이디어와 도전은 이미 블록체인 커뮤니티에서 스스로 탐구해온, 그리고 앞으로도 깊이 연구할 것들”이라며 “(특히) 책의 한 챕터에서 우리 자신과 페이스북 같은 서비스 사이의 경제적 관계를 재정의하는 ‘개인정보 시장’이라는 개념은 이더리움 커뮤니티가 공들이는 ‘개인정보 시장’ 프로젝트에서 볼 수 있다”고도 설명했다.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은 가명정보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탐구도 촉발했다.블록체인 기반 소셜미디어 플랫폼 피플프로토콜의 제임스 모핏 공동창업자는 블록인프레스와의 인터뷰에서 “사용자가 데이터 주권을 가질 때 기업들이 사용자를 유치하려는 경쟁을 통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노력한다”며 “우리는 데이터 자체를 팔아 공공재가 되게 하기보단 데이터로부터 모델을 추출하는 프로토콜을 만들려 한다”고 말했다. 

피플프로토콜의 나딤 메이즌 공동창립자도 “개발자에게 필요한 건 데이터의 모양새이기 때문에 사용자가 자기 데이터 자체를 그들에게 넘길 필요는 없다”며 “목장주인이 젖소를 파는 게 아니라 우유를 팔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유했다. 개인정보를 비식별화하고, 나아가 정보주체로서 각자 데이터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에 관한 연구도 이어진다는 뜻이다.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암호화 기술이 더 발전해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지난 4월 열린 제2회 분산경제포럼(디코노미)에서 암호화 이메일 시스템 PGP를 창시한 필 짐머만 박사는 “감시 기술이 확산하고 있지만, 암호화 기술은 우리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만큼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다”며 “진짜 암호화폐를 만드는 사람은 암호화 방식 자체에 더 집중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현장에 참석한 부테린은 “암호화폐의 경우 암호화 기술을 실험해보기 좋은 테스트 그라운드”라며 “향후 암호화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데이터경제냐, 판옵티콘이냐. 이 양갈래 길목에서 블록체인은 “다른 길이 존재한다”고 알려주고 있다. 개인정보를 재산권으로써도 보호하는, 더불어 개인이 이를 자유롭게 다루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다.

관련 기사 : 비트코인, 블록체인이 걸어온 길…미래는 이미 와 있다

썸네일 출처 :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