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더불어민주당·일본 스미모토상사’..에너지 트레이드에 꽂힌 사연은

2020년, 신기후체제 출범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1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는 신기후체제 합의문인 ‘파리 기후 협정’을 채택했다. 교토의정서를 대체하는 ‘파리 협정’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섭씨 1.5~ 2℃로 제한하는 것이 목표다. 

신기후체제를 앞둔 현재 프랑스 파리 기온은 섭씨 42.4도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구 온난화, 즉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전세계의 노력은 새로운 산업을 탄생시켰다.

대표적으로 지역 주민끼리 소규모 전력을 거래하는 스마트그리드(smart grid) 시장이 있다. 화력발전을 중심으로 대규모 발전소가 멀리서 전력을 보내주던 기존 모델을 벗어나 집집마다 태양광 패널 등으로 신재생에너지를 생산해 쓰는 그리드 모델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현재 이웃간 전력거래 개념 도식. (이미지 출처 : 목포대 논문)

한국 에너지경제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이번 신기후체제는 신재생에너지 시대 시발점으로 기존 에너지정책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한다”며 “한국도 기업 직접규제보단 시장 및 기술을 통해 자발적으로 감축을 유도하는 걸 목표로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맥락에서 전력 거래 시장은 데이터마켓과 마찬가지로 점점 선명한 미래가 되고 있다.

국내 통신사 KT,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 일본 스미모토상사는 지난달 이 접점에서 만났다. 

KT는 인공지능(AI)-블록체인 기반 에너지 트레이딩 시스템을 출시하기로 했다. 산업통상자원 중소벤처기업위 소속 김 의원은 민간에서 신재생에너지를 자율적으로 거래하는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스미모토상사는 다국적 석유회사 쉘(Shell)과 함께 뉴욕 소재 신재생에너지 거래 앱에 투자했다. 글로벌 규제-에너지 시장-IT기술의 변화가 ‘신재생에너지 거래’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연결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전력구매계약 #RE100 #대세는이것

신기후체제를 준비하는 움직임은 신재생 에너지 거래 시장을 여는 신호탄이 됐다. 애플, 구글 등 IT공룡이 마치 “100% 재생에너지로 제품을 내놓겠다”는 캠페인을 벌이는 식이다. 

(지난해 12월 폴란드에서 열린 24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선 파리협정의 구체적 이행지침도 가까스로 마련됐다. 영상 출처 : 연합뉴스TV)

국내에서도 이런 흐름에 맞춰 이 거래 시장을 민간에 개방하자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 ‘2030 에너지 신산업 전략’에선 이웃집에 100kWh 이하를 생산해 판매하는 에너지 프로슈머(prosumer)가 대표적인 신산업 전략 중 하나로 손꼽힌다. 

프로슈머는 생산(produce)과 소비자(consumer)가 결합한 신조어다. 소규모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 육성이 2030년까지 총 5500만 톤의 온실가스 감축, 50만 개 일자리 창출, 100조 원 규모의 에너지 신산업 시장 구축과 함께 주요 골자로 명시된 셈이다.

지난달 말 김성환 의원은 전기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전력구매계약(PPA)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PPA는 에너지 구매자와 생산자가 한국전력공사(한전)을 거치지 않고 사전에 동의한 기간 동안 미리 협의한 가격으로 에너지를 거래하는 계약이다.

현행 전기사업법에는 한 사업자가 두 가지 이상의 전기사업을 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즉, 전기를 생산하면서 동시에 이를 직접 판매할 수 없다는 의미다. 김 의원은 “시급한 기후 위기 상황 속에서 글로벌 기업은 100% 재생에너지 사용에 동참하는 등 변화를 선도하고 있다”며 “기업 PPA를 도입하면 기업과 재생에너지 발전사들이 가진 자율성, 창의성으로 신산업을 태동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6월 산업통상자원부도 신재생에너지를 직거래 관련 예외규정으로 두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해외는 이미 에너지 거래 민간시장이 제도화하는 추세다. 서울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네덜란드 반데브론에서 세계 최초로 양자간(P2P)전력 플랫폼을 개설한 후 영국, 독일, 뉴질랜드, 미국 옐로하사 등에서 양자간 전력 중간거래소가 등장했다. 미국은 2015년도부터 소규모로 전기를 생성하는 ‘분산자원(DR)공급자’가 각자의 자원을 모아 도매전력시장(CAISO)에 참여하도록 아예 제도를 만들었다. 

(에너지전환아카데미에서 전세계 온실가스 감축 트렌드에 대해 설명하는 김 의원. 영상 출처 : 김성환TV)

김 의원이 언급한 ‘100% 재생에너지 사용’도 RE100 캠페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캠페인은 제품 생산 과정에서 100% 재생에너지만을 전력으로 쓰겠다는 선언이다. 현재 구글, 애플, BMW, GM, 아마존 등 190개 이상의 기업이 이 캠페인에 참여한다. 이 기업에 부품을 대는 기업들은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한 제품을 납품하라’는 요구를 받는 중이다. 아직 국내에서 이 캠페인에 동참한 곳은 없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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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0일 쉘의 기업벤처캐피털인 쉘벤처스와 일본 스미토모상사는 블록체인 기반 지역 에너지 플랫폼 LO3에너지에 투자했다고 밝혔다. 이 플랫폼은 앱을 거점으로 태양광 패널을 가진 거주민이 태양광 패널이 없는 이웃에게 에너지 포인트(크레딧)을 판매하는 마이크로그리드 플랫폼을 개발한다. 이미 유럽 최대 엔지니어링사 지멘스(Siemens)로부터도 투자를 유치한 에너지 스타트업이다.

쉘벤처스 커크 코번 투자 디렉터는 투자 이유에 대해  “저탄소 미래로 나아감에 따라 쉘은 에너지 전환을 가능케 하는 혁신적인 기업에 투자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며 밝혔다.

스마토모상사 누나카 노리히코 이사도 “전력 부문의 급격한 변화, 특히 분산형 신재생에너지의 빠른 보급으로 LO3에너지가 창안한 새 분야에서 사업을 확장할 의향이 있다”며 “공동작업을 통해 깨끗하고 친환경적인 지역 사회를 실현할 것”이라고 말했다.

LO3에너지 관계자는 “에너지를 둘러싼 순환 경제를 만들고, 지역 에너지 마켓의 여러 자원을 연결해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금융 및 환경 측면에서 이익을 주는 새 기회”라며 “P2P에너지 트레이딩뿐 아니라 비즈니스를 위한 에너지 헷징, 가상 전력발전, 전기차 충전 및 수요 응답 다각화 등 여러 사업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뉴욕 브루클린에서 마이크로그리드 프로젝트를 시도한 LO3에너지. 영상 출처 : LO3 Energy)

이처럼 블록체인은 이제 막 떠오르는 P2P 전력 거래 시장과 맞물려 그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블록체인이 양자간 에너지 거래 과정을 일부 자동화하고, 해킹 피해를 최소화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블록체인 기술의 에너지 거래 모델 개발 연구」논문에 따르면 이웃간 전력거래는 중앙발전소가 원거리에서 전력을 보내주는 것보다 효율적일 수 있다. 예컨대 태양광 에너지의 경우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져 잉여 에너지가 발생하는 현상을 보인다. 이를 P2P 에너지 거래 시스템에 연계해 판매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이때 블록체인은 기존 전력계통과 P2P 거래 시스템을 연계해 실시간으로 전력생산 및 거래 데이터를 담는 장부 역할을 맡는다. 논문은 “개인간 거래가 활성화하면 (실시간 요금제 등이 가능해져) 국가 전체로도 에너지 사용을 합리화할 수 있다”며 “블록체인은 (해킹에 대한 안전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확대 사용하기 어려운 전력거래 시스템이) 자동으로, 안전하게 거래를 수행하는 기능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블록체인 기술개발사 코인플러그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생산자와 공급 의무사업자가 맺는 거래계약은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의 경우 발급 및 이전과정에서 한국에너지공단, 한전, 사업자 등 이해관계자가 서로 다른 시스템을 쓰는 탓에 정보 공유 제한, 관리 비용 증가 등의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블록체인 기반의 개방형 REC 거래 시스템를 구축한다면 행정절차 간소화, 업무 효율화를 기대할 수 있어 향후 자연스레 소규모 에너지 거래, 탄소배출권 시장에도 (블록체인 플랫폼이) 고려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사업자’는 50만kW 규모 이상의 발전사업자가 총 발전량의 일정 비율 이상을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해야 한다. 이때 전력거래소를 통해 자체 생산한 신재생에너지 부족분을 타 발전사업자로부터 REC 형태로 구매해 공급인증기관에 제출할 수 있다. 코인플러그는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자인 한국남부발전과 함께 해당 플랫폼 개발에 나선다고 전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애플 공동창립자 워즈니악, 에너지 거래 블록체인사 공동창립

#KT #에너지트레이딩 #지각변동 #한국은어디쯤

국내 기업들도 에너지 거래 시장에 뛰어드는 분위기다. 블록체인, AI 등의 신기술로 중개업자 자리를 노리는 식이다. 인프라-시장-규제 삼박자를 필요로 하는 ‘장기전’이기도 하다.

KT는 지난달 AI-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소규모 전력을 중개하는 ‘기가 에너지 트레이드’ 서비스를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인공지능은 에너지 관제, 수요 예측, 거래 중개 등에 포괄적으로 쓰일 예정이다. 블록체인은 고객의 발전 수익 관련 정보를 관리하는 데 사용된다. 

이기욱 KT 에너지플랫폼사업단 상무는 “에너지 생산-소비-거래를 아우르는 통합 에너지 서비스 사업자로 전기를 생산해 쓰고 저장하고 남는 전기를 파는 *가상발전소(VPP)로의 진입을 의미한다”며 “기술력을 바탕으로 발전수익 극대화와 안전한 거래, 국가 전력계통 안정화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전력거래 중개 및 관리 시스템이 통신사에게도 차세대 먹거리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VPP(Virtual Power Plant) : 각지에 흩어져 있는 소규모 신재생 에너지 자원을 하나의 발전소에서 관리하는 것처럼 통합해 집합발전량으로 예측, 운영하는 IT서비스다.

에너지 거래 시장이 앞으로 풀어야 할 핵심 문제 : △전력망 선택 문제 △에너지 관련 데이터의 불확실성 증가 △복잡한 제약조건 △데이터 정밀도 △미터 후반부(BTM) 문제 △정보 비대칭 (이미지 출처 : 인코어드)

다만 에너지 거래시장에 대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의견도 적잖다. 향후 신기술을 적용한 에너지 거래 플랫폼이 등장하겠으만, 현재로선 기술 외에도 해소해야 할 이슈가 많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전력거래를 위해 수요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IoT 인프라나 이해관계자간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는 장치, 소규모 전력을 모아 팔 수 없는 현행법 개정 등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스마트 전기사용량 분석 플랫폼 개발사 인코어드의 최종웅 대표는 “국내 소규모 전력거래를 위해선 현행 규정상 200만 원이 넘는 스마트계량기를 달도록 돼있어 중계거래로 수익이 크지 않은 상태”라며 “15분 측정단위로는 TOU(Time-of-Use 시간대별 사용)와 같은 변동요금제를 시행하기도 어렵다”고 꼬집었다. 

재생에너지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루트에너지의 윤태환 대표는 “향후 실제 전력을 거래하게 된다면 블록체인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여전히 아이디어 수준에 가까워서 블록체인이 도입돼야 할 필요성이 적다”며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일”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분산형 신재생에너지 시장은 블록체인뿐 아니라 에너지 저장 용량, 스마트 미터기, 부하관리 등 여러 기술이 한데 발전하는 분야다. 서울에너지공사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VPP는 테슬라, 선버지에너지 등의 민간 기업을 중심으로 전력 공급, 수요-공급에 따른 전력 가격 책정 기술, 통신망을 활용한 수요반응 관리 등의 플랫폼이 개발됐다.

「블록체인 기술의 에너지 거래 모델 개발 연구」논문은 “전기차, 프로슈머, 수요관리, 중개사업자, VPP, 에너지관리(EMS) 등 미터기 뒤에서 벌어지는 큰 변화 앞에 있다”며 “다양한 분산에너지 도입으로 발전 분야의 탈중앙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만큼 스마트 미터기, 에너지 분야의 표준 스마트 컨트랙트(계약서) 등을 활용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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