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돈돈 2019] ③ 내 기부금으로 요트파티를?…블록체인 통한 분산신뢰로 해결

[편집자주]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이른바 ‘놈놈놈’이 무법천지 만주에서 정체 불명의 지도 한 장을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추격전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지도에 표시된 도착점에 당도한 놈놈놈이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눈 후 끝이 난다. 이같은 줄거리는 블록체인·암호화폐 업계를 떠올리게 한다. 현재 이 업계에는 기술 상용화를 위해 팔을 걷어붙인 ‘좋은 돈’과 한탕을 노리고 사기 등을 일삼는 ‘나쁜 돈’, 그리고 정체불명의 백서 하나를 믿고 투자한 ‘이상한 돈’이 있다. 정부의 규제 손길이 미치지 않은 무법천지 시장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들 돈돈돈은 올해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다. 투자 사기를 벌인 나쁜 돈은 법원을 향하고 있고, 말그대로 하얀 종이인 백서에 속은 이상한 돈은 차례로 쓰러지는 중이다. 좋은 돈은 현재까지 마땅한 상용화 사례를 찾지 못해 떠돌고 있다. 블록체인·암호화폐 업계의 올해 최후의 승자는 과연 누구일까. 그리고 정부의 규제 손길이 올해는 무법천지 시장에 닿을 수 있을까. <돈돈돈 2019>의 결말은 어떻게 될지 블록인프레스가 연중 기획으로 그려봤다.

몇년 전 새희망씨앗이라는 한 기부단체의 기부금 유용 사건이 발각돼  국민적 공분을 산 적이 있다. 이 단체는 4만9000여 명으로부터 받은 128억 원의 기부금을 대부분 직원들의 요트파티나 외제차 구입 등에 쓴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은 사람들의 기부 온정을 식게 만든 사건으로 회자되곤 한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의 기부금 유용 사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공금유용 의혹, K 스포츠재단의 자금 모금 및 횡령 의혹 등도 사람들의 질타를 샀다. 

이 같은 사건들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는 기부금의 집행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는 점이 꼽히곤 한다. 비영리단체들이 성금을 얼마나 모아 어느 곳에 어떤 방식으로 썼는지 알기 쉽지 않다는 뜻이다. 2017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나눔실태’ 조사에 따르면 1년간 기부 경험이 없었던 응답자들이 기부하지 않는 이유 중 2위는 “시설이나 기관, 단체를 믿을 수 없어서”였다. ‘기부 포비아'(Phobia.공포증)란 말이 유행한 것도 이때부터다. 

지난 5월 징역형을 선고받은 새희망씨앗 회장 관련 보도(출처=KBS)

사단법인, 재단법인, 자선단체 등 비영리단체를 감시하는 기구가 마땅치 않은 점도 이러한 기부 포비아를 확산시킨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현재 서울시,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가 주무관청인 비영리단체는 조사 결과 각각 2264곳, 40곳, 437곳으로 확인됐다. 이들 비영리단체의 정보를 파악할 제3자 민간 모니터링 창구도  현재로서는 국세청 공시자료를 기반으로 하는 한국가이드스타가 유일하다.  

단체들의 ‘불량 공시’도 문제다. 한국가이드스타에 따르면 1277개 공익법인 중 고유목적사업비, 모금비용 등 공시가 불충분한 단체는 2019년 기준 944곳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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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해야 할 곳에 비해 감시 기관이나 시스템이 크게 부족하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는 것도 문제다. 여성가족부 법무감사담당관은 “모든 부처가 마찬가지지만 현실적으로 여가부가 단체의 자금 운용 과정을 모두 감시할 수는 없다”며 “일정 금액 이상의 법인이라면 외부 감사를 받기도 하지만, 단체들이 목적사업에 맞게 회원이나 기부자로부터 모은 돈을 회원들 스스로가 감시하는 게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회원이나 기부자들이 참여 가능한 공공 감시 플랫폼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둘씩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올해 출간된 <신뢰 이동>의 저자 레이첼 보츠먼에 따르면 우리는 신뢰의 세 단계 중 ‘분산적 신뢰’로 나아가고 있다. 분산적 신뢰란 플랫폼과 네트워크를 통한 여러 주체들의 참여가 신뢰와 비즈니스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뜻한다. 전 단계인 ‘제도적 신뢰’에서 신뢰 패러다임이 전환돼야 가능한 결과다. 비영리 단체들이 신뢰 리스크를 극복하려면 기부자들의 알 권리를 시스템적으로 보장해줘야 함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암호화폐가 블록체인 위에서 좋은 돈으로 쓰일 수 있다는 가능성도 이 지점에서 싹을 틔운다. 블록체인을 통해 기부금의 내역 검증에 관계인 모두가 참여할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기부자의 알 권리가 향상되고 자금의 출처, 집행 내역, 자금 분배 과정에서의 의사결정구조나 이해관계 등 기부금을 둘러싼 지배구조가 투명해져 신뢰도가 높아질 수 있다. 블록체인은 데이터의 생성, 저장, 거래 과정이 중앙 서버가 아니라 분산 원장에 저장되어 모두에게 투명하게 공개되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배경으로 등장했던 비트코인은 *신뢰비용을 줄이면서도 신뢰를 발생시킬 수 있는 화폐 시스템이 되는 게 목표였다. 재작년말 비트코인이 세간의 주목을 크게 받은 이후 많은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신뢰’를 여러 산업단에 적용하겠다며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신뢰에 관한 사회적 요구를 시스템화시켜줄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다.

*신뢰비용: 서로를 믿을 수 없는 두 거래 당사자가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부담하는 탐색비용, 계약비용, 감사비용, 법정비용 등을 뜻한다.   

2018년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기획연구 보고서에서 강형구 연구위원은 “비영리단체가 정부 주도의 수직적인 관리 구조에서 이해관계자들이 개입할 수 있는 자율적인 지배구조로 설계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강 위원은 “비영리단체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소유 자산 등록, 기부 프로젝트 등록, 기부금 활용 내역 등의 사항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이해관계자들 간 균형이 향상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래서일까. 국내외 여러 비영리단체들 몇 곳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유니세프는 지난해 2월 ‘게임체인저‘ 채굴 프로그램을 배포해 게이머들로부터 이더리움을 기부 받기도 했다. 컴퓨터를 이용하지 않을 때 ‘게임체인저’ 프로그램을 실행하면 이더리움이 채굴돼 유니세프를 통해 시리아에 기부된다. 유니세프는 채굴 활동, 채굴 파워, 채굴자, 채굴된 이더리움 등 모든 내역이 실시간으로 공개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나아가 유니세프 프랑스 위원회는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9종을 기부금으로 받는 캠페인도 진행 중이다. 웹사이트에 마련된 9종의 암호화폐 주소로 누구든지 암호화폐를 보낼 수 있다. 모든 트랜잭션 내역은 블록체인 탐색기를 통해 언제든 볼 수 있다. 이번 달 1일 현재 유니세프 비트코인 지갑에는 1만3000여 달러가 모금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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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도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카카오의 자회사 그라운드 X, SK 그룹의 ‘행복나눔재단’, 비영리 스타트업 ‘프리즈밍’은 함께 현물 기부자와 피기부자의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하고 최종 전달 여부를 추적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기부의 메커니즘과 인식을 바꿔 사람들과 사회에 신뢰를 주는 이른바 ‘소셜 임팩트’를 주는 게 목표다. 오는 9일 그라운드X는 ‘제2회 블록체인 포 소셜 임팩트’ 컨퍼런스를 열고 지난 8개월간 진행한 이 프로젝트를 소개할 예정이다.  

암호화폐 거래소 중에서는 코인원이 ‘코인원 기브’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아프가니스탄 여성 개발자를 위한 코딩 교육기관 CTI에 비트코인을 기부하기도 했다. 

이처럼 돈의 흐름목에 있던 중개자가 블록체인으로 대체되면 신뢰 비용은 그만큼 줄어들 수 있다. 단체를 감시하기 위한 각종 사회적 비용이 줄어들 뿐 아니라, 누구나 돈의 흐름을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을 트러스트리스(Trustless) 시스템이라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군가를 굳이 신뢰하지 않아도 시스템을 통해 신뢰가 보장되는 것이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중앙은행의 독점 발권력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우리 사회의 은폐된 곳을 비춰주는 사회적 등대로서의 가능성도 보여주고 있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기부 시스템에 도입하기에는 아직 걸림돌이 적지 않다. 세액공제가 그중 한 가지다. 국세청에서는 연말정산 공제 대상자가 연초 국세청에 기부금 지출 내역을 신고하면 일정 비율에 따라 납부할 세액을 공제해준다. 법무법인 디라이트 조원희 대표 변호사는 “기부는 세액공제에 한 가지 의미가 있는데 암호화폐를 수령하는 곳에서 기부금 처리 금액을 산정하기가 애매해 회계, 세무 처리하기가 쉽지 않으므로 아직은 도입하기에 이른 느낌이다”라고 설명했다.

암호화폐를 통해 자금세탁이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금융사 수준의 고객확인제도(KYC)가 자리잡지 못한 환경에서는 자금 송수신자가 불법 자금을 암호화폐의 익명성 뒤에 숨겨 이동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오킴스의 권오훈 파트너 변호사는 “후원을 명목으로 검은 자금들이 암호화폐를 통해 자금세탁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거래 흐름 자체는 공개할 수 있지만 자금 출처가 불명확할 수 있는 단점이 있기 때문”이라 말했다. 권 변호사는 한 가지 방안으로 “후원 시스템에 대해서도 본인 인증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술은 중립적이다.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기술의 얼굴이 달라질 수 있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중앙화 시스템의 독점과 그로 인한 신뢰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10년 전 혜성처럼 등장했다. 지금 블록체인은 많은 혁신가들과 함께 아직 불확실성의 터널을 지나는 중이다.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대중들은 여전히 블록체인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이들이 블록체인에 뛰어들어 시스템을 통한 신뢰 구축에 매진하고 있다. 이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대답을 해야 할 때다. 

썸네일 출처: O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