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1마일끼리 다투는 세상’…규제 주도권 잡거나 끌려가거나

“유럽연합(EU)에는 구글이 없잖아요.”

[블록인프레스 김지윤 기자] 지난해 상반기 국회 토론회에서 만난 영국 경제전문가의 말이다. 토론회는 국가별 자동화 수준을 주제로 진행됐지만, 개인정보보호법(GDPR)에 대한 질문이 빠지지 않았다. ‘EU가 무리하게 GDPR을 단행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이 전문가는 “EU에 구글은 없지만, 구글을 견제할 유인은 있다”고 답했다. 

4일(현지시간) 싱가포르에서 열린 ‘인터폴월드2019’ 행사에 참석한 국제형사경찰기구 웨르겐 스톡 사무총장은 “기업과 데이터 협약을 맺어 산업계와 파트너십을 늘리는 등 인터폴이 게이트웨이(Gateway)로 자리매김하겠다”고 다짐했다. 기술적으로 따라잡을 수 없다면 규제로 균형을 맞추겠다는 포부다. 페이스북의 22억 이용자는 규제 당국이 배수진을 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GDPR을 포함한 EU의 행보는 ‘규제로 고삐 조이기’로 읽힌다. 행사 기조연설에 참여한 네덜란드 리처드 반 후이돈크(Richard van hooijdonk) 미래학자는 “EU에선 프로세스 설명이 불가능한 인공지능(non-explainable AI)을 금지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 연합 집행위원회는 EU 회원국 정부의 상호동의에 의해 5년 임기로 임명되는 위원들로 구성된 초국가적 독립 기구다. (이미지 출처 : 유럽위원회)

실제 테크크런치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가 별도로 배치한 AI HLEG 자문단은 보고서를 통해 “개인과 사회에 대한 상업적 감시기술에 맞대응(counter)해야 한다”며 “(비즈니스 모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려해야 겠지만) 무료 서비스를 포함해 온라인 트래킹이 프라이버시 보호에 엄격하게 부합하는지 보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자문단은 업계 인공지능 전문가와 시민단체 대표, 정치 자문 및 정책입안자, 학계·법조 전문가 등이 모여 지난해 6월 구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와 분야의 경계를 넘어 신기술에 대한 규제 방안을 제시하려는 움직임이다. GDPR과 마찬가지로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규제 영역에서 *’창시자 효과’를 짐작할 수 있다.

*창시자 효과(Founder Effect) : 집단유전학에서 한 개체군에 상대적으로 적게 분포했던 유전인자가 새로운 곳에 이주했을 때 다수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효과. 소수가 무주공산을 점유해 전혀 다른 유전자 빈도를 구축, 진화의 방향에 영향을 주는 현상이다.

인터폴 행사에선 3일간 연달아 암호화폐와 다크웹/넷에 대한 실무자 워크숍이 진행됐다. 지난 내용에 대해 소개하는 인터폴 아니타 헤젠버그 디렉터의 모습.

암호화폐 규제에서도 EU는 여러 차례 등장하고 있다. 지난 5월 유럽형사경찰기구(유로폴)는 최초로 ‘비트코인 믹서(Mixer)’ 서버 단속에 나섰다. 믹서는 외부에서 유입된 암호화폐를 한데 섞은 후 다시 방출해 자금흐름을 추적하기 어렵게 하는 서비스다. 또 암호화폐 전문 매체 코인데스크에 의하면, 지난달 유로폴은 사법기관 집행관을 대상으로 암호화폐 관련 범죄를 어떻게 다룰지 가르치는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다크웹 데이터 분석사 에스투더블유랩 서상덕 대표는 “유로폴의 경우 유럽에 여러 나라가 인접해 있는 만큼 자금세탁 규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편”이라며 “암호화폐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다크웹(Dark Web) : 구글, 네이버 등 통상 검색엔진에서 데이터를 검색(인덱싱)할 수 없는 익명 기반의 웹사이트 집합체를 말한다.

(모두를 위한 인공지능을 주제로 세바시 강연에 참여한 구글 인공지능 총괄 제프 딘 펠로우. 영상 출처 : 세바시)

이번 인터폴 행사가 열린 싱가포르도 새로운 규제의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 싱가포르에서 출발한 인공지능 스타트업 아도AI(Addo AI)의 아예샤 칸냐 대표는 기조연설에서 “싱가포르는 인공지능 거버넌스를 규제 프레임워크를 만드는 최우선으로 두고 있다”며 “인공지능 이니셔티브로 UN급 컨테스트에서 수상하는 등 단지 립 서비스에 그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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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신기술은 각 기관의 규제 역량을 시험하고 있다. 소셜미디어, 암호화폐, 데이터 및 인공지능은 국경을 넘나들며 각국 규제 당국의 행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EU가 제시한 규제는 EU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목청을 키우지 못하면 규제 당국도 남의 목소리에 끌려가는 시대가 머지않았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기술이 100마일로 달릴 때 정책은 3마일, 법은 1마일로 간다”고 말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인터넷은 3마일, 1마일끼리도 겨루게 했다. IT 규제는 전 세계 네트워크와 어떻게 호흡할지 고민하는 단계에 이미 접어들었다. 누가 주도권을 잡을 것인가. 강한 자가 아니라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다.

썸네일 출처 : 영화 ‘남한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