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코노미] 전운 감돈 ‘비탈릭 VS 루비니’ 암호화폐 논쟁…결과는?

전운이 감돌았다. 4일 오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제2회 분산경제포럼'(이하 디코노미·Deconomy) 연단에는 이더리움 재단의 비탈릭 부테린과 뉴욕대 경영대학원 누리엘 루비니 교수가 앉았다. ‘암호화폐의 내재가치와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한 패널 토의였다.

이들은 타협 없는 논쟁을 벌였다. 부테린이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가져올 미래를 논할 때 루비니는 “당신들의 선호 문제가 아니라 사회 질서의 문제”라고 맞받아쳤다. 새로운 시장에 대해 정부가 규제에 나서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의미이다. ‘암호화폐가 화폐로써 전혀 쓰이지 않는다’는 루비니의 힐난에 부테린은 “이미 30~40초 만에 암호화폐로 결제하는 경험을 해봤다”며 “탈세 문제 등에 대해서도 오히려 블록체인이 개선점을 제시할 수 있다”고 대응했다.

앞서 루비니는 스스로 ‘버블 전문가’로 칭하며 암호화폐가 거품 현상의 모든 속성을 보여준다고 날선 비판을 이어왔다. 블록체인에 대해서도 ‘과대평가 받는 스프레드시트’라고 꼬집었다. 그가 트위터를 통해 “비탈릭은 사전 채굴한 사기꾼”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하자 부테린은 버블을 예측해온 루비니의 행적을 비꼬았다. 이더리움을 창시한 ‘블록체인 전도사’ 부테린과 루비니의 토론은 이번 디코노미의 최대 관전 포인트 중 하나로 꼽혔다.

4일 뉴욕대 경영대학원 누리엘 루비니 교수가 이더리움 재단의 비탈릭 부테린과 패널 토의를 하고 있다.

현장에서도 루비니의 매운 혀는 멈추지 않았다. 루비니는 블록체인 업계에 대해 “어느 것도 전혀 분산화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현재 대부분 블록체인이 채택한 관리 및 합의 방식인 작업증명(PoW)를 예로 들었다. 그는 “채굴사업자는 블록체인을 과점해 51%의 공격을 유발하거나 지나치게 높은 네트워크 수수료 문제를 야기한다”면서 “부테린을 독재자라고 부른 이유도 이더리움 재단을 포함한 개발자 사이에도 중앙화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청중석에서는 야유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부테린은 “분산화가 쉽지 않다고 해서 불가능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암호화폐 업계에서 부의 불평등이 전문가들의 말만큼 심각하진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2018년, 2019년 상황에 비춰 우려한다는 것을 안다”면서도 “분산화, 확장성, 보안성 모두를 취할 수 없다는 트릴레마가 절대로 풀 수 없는 수학적 문제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더리움 업그레이드 버전의 ‘세네리티’로 가닿기 위해 여러 개발자가 샤딩, 플라즈마 등의 시스템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설명도 잇따랐다.

루비니는 “PoW가 아닌 지분증명(PoS)으로 문제를 타파하겠다고 하지만 PoS야 말로 소수에게 더 많은 힘을 실어주는 중앙화라고 생각한다”고 난색을 표했다. 현재 론칭을 앞둔 인터체인 프로젝트 ‘코스모스’와 이더리움 로드맵의 막바지인 세레니티에 대해서도 “1~2년 전에도 PoS로 전환한다면서 실패하지 않았느냐”며 루비니는 “과학을 통해 점차 시스템 진전을 이루겠다고 했지만, 그냥 상상에 가깝다”고 쏘아붙였다.

비탈릭이 패널 토의에 임하고 있다.

두 사람은 이른바 ‘쓰레기코인'(shit coin)이 많다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암호화폐 내재가치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관점을 이어갔다. 루비니는 “실질적인 양적완화를 해도 암호화폐처럼 급격하게 붕괴하는 결과가 일어나진 않는다”고 분석했다. 그는 “암호화폐 가치가 90% 이상 가치를 잃는 데 100년이 걸린 것도 아니다”라며 “베네수엘라, 짐바브웨 등의 초인플레이션은 현실에서 예외적인데 사이버 세상에선 너무 흔한 사례라는 점에서 암호화폐가 실물경제의 인플레이션 문제에 대한 대안이 될 순 없다”고 말했다.

부테린은 화폐 가치에 거품이 있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미국 달러, 소비자지수 등에 비춰볼 때 지난 100년간 굉장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건 사실”이라면서 “암호화폐 시장의 현황은 주식시장, 금시장 등에서도 목도할 수 있었던 초기 자산의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 세계 법정화폐를 대체한다기보단 틈새를 노리는 것과 같다”며 “장기적으로는 크립토경제가 성장해 가치가 ‘영(0)’으로 수렴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루비니는 암호화폐를 화폐로 부를 수 없는 이유로 △토큰 발행이 너무 쉽다는 점 △코인 결제가 흔치 않다는 점 △가격 변동성이 커 가치 저장 기능이 없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암호화폐는 금융시스템이 아니라 물물거래 시스템에 가깝다”며 “암호화폐 공개(ICO)와 같은 사기, 암호화폐 가격 조작, 자금세탁 등의 문제는 기존 금융시스템에 비해 암호화폐가 더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걸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부테린은 비전통적인 방식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이득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입장에서 제 주거지를 증명하는 게 쉽지 않은데, 이런 용도가 앞으로 블록체인에서 중요해질 것”이라며 “시간이 지나 시스템 효율성이 증가하면 분산화 금융부터 비금융 애플리케이션까지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익명성에 대해서도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견해를 보였다. 루비니는 “법 집행기관 입장에선 암호화폐 관련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한 사람을 토대로 범죄자를 용이하게 쫓아 검거한다”며 오늘날 ‘암호화폐 지갑을 가진 사람은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받는다고 꼬집었다. 이어 “실제로 완벽한 익명성이 보장될 수 없다”며 “스위스 비밀계좌도 익명성으로 인해 문제가 된 적이 있기 때문에 고객신원확인(KYC)과 자산 모니터링, 과세를 적용하는 게 기존 시스템”이라고 전했다.

부테린은 검열 저항성을 언급하며 “미국의 경우 정부가 적극적으로 은행 지불시스템에 압력을 가해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고 공격했다. 이런 측면에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의 검열 저항성이 중요하다”며 “오프라인에선 당국에 저항하는 게 점차 어려워지지만, 온라인에서 프라이버시 전쟁은 더 자유로워지는 방향을 향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루비니는 “이미 인터넷에서 횡령, 탈세, 테러리즘 지원, 인신매매 등에 대한 자금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어떤 나라든 모든 금융거래를 익명화하지 않는 것을 지향한다”며 “암호화폐가 다음 세대의 스위스 비밀계좌가 돼선 안 되고, 어떤 정부든 무정부 상태를 원하는 게 아닌 이상 이런 익명성을 허용할 수 없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부테린은 “암호화폐를 활용한 모든 활동을 선호하지 않지만, 중요한 움직임이 진행 중”이라며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기술도 어떤 거래든 세밀한 부분까지 증명해서 납세가 정당하게 이뤄지는 등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CBDC)에 대해서 부테린은 “CBDC가 멋진 아이디어이고 금전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면서도 “정부가 모든 거래에 대한 접근권을 가진다면 무서운 일”이라고 우려했다. 루비니는 기존 시스템이 그랬듯 감시와 자율권 사이에서 CBDC도 프라이버시 이슈를 포기하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기업들이 자연스레 활용하고, 기존 거래에 쓰는 방향으로 CBDC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서도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형태는 블록체인이나 분산원장 등을 활용한 비트코인과 전혀 다를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