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모건도 하는데’ 발목 잡힌 해외송금 서비스, 모인…4월엔 날개 달릴까

‘와신상담(臥薪嘗膽)’. 섶에 누워 곰의 쓸개를 씹으며 재기를 꿈꾼다는 뜻의 사자성어다. 국내 핀테크사 ‘모인’ 서일석 대표의 소셜미디어 상태메시지이기도 하다.

모인은 지난 1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정보통신기술(ICT) 규제샌드박스 임시허가 및 실증특례(규제샌드박스)’ 안건을 신청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안건은 암호화폐를 포함한 블록체인 기반의 해외송금 서비스도 소액 해외송금업자로 등록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규제샌드박스 1호 신청사’로 입성할 것이라 기대를 모았던 모인은 고배를 마셨다. 신기술 서비스 심의위원회가 2월, 3월 연이어 열렸지만, 모인 안건은 심의대상에서 제외됐다. 관계부처 협의가 더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법무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 유관 기관은 “가상통화를 통한 해외송금 업무가 불법 외환거래(환치기)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며 난색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 규제 샌드박스 시행이 내달 1일 눈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모인의 안건은 4월 재심의로 넘어갔다.

지난 17일 서울 강남 스튜디오블랙에서 만난 서 대표는 규제 당국의 우려에 고개를 저었다. 모인이 신청한 아이디어는 해외에서 이미 시도하고 있는 사업모델이라고 설명했다. JP모건을 포함한 대형 상업은행은 이미 결제 및 청산 용도로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고려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서 대표로부터 모인의 사업모델과 해외송금 서비스 경쟁, 이 분야에서의 블록체인 및 암호화폐 용례를 들어봤다.

행사에서 모인을 소개하는 서 대표의 모습. (image : moin)

Q.모인은 어떤 회사인가.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기존 시스템보다 해외송금 서비스를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탄생한 회사다. 2016년 3월에 시작했으니 만 3년을 넘겼다. 사용자 입장에선 해외송금 네트워크가 오래됐고, 기존 플레이어가 과점하는 시장이라 정해진 옵션을 써야 한다. 혁신할 지점이 적다. 해외송금을 위해 스위프트(SWIFT) 망이나 중개은행을 거친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 부분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이 시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고, 연구 개발 및 상용화를 진행했다. 모인의 결과물은 소비자들이 훨씬 빠르고, 싸고, 투명한 구조를 통해 해외송금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Q.특히 국내에서 해외송금을, 그것도 블록체인을 도입해 해결하고자 한 이유를 더 듣고 싶다.

국내 송금 시스템은 모든 은행이 금융결제원 망으로 연결된, 관 주도로 형성된 독특한 구조다. 각각 은행이 금융결제원이라는 중앙 정산 및 청산 기구를 통해 효율적으로 송금을 처리하는 식이다. 미국, 일본, 싱가포르 등은 자국 내 송금이 실시간으로 이뤄지지 않고 수수료도 비싼 편이다. 은행 내에서도 송금에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있다. 그에 비해 한국은 송금 속도도 빠르고, 수수료도 거의 0원에 가깝다. 속도, 가격, 편의성 측면에서 토스나 카카오페이 같은 회사들이 사용자경험을 바꾸는 식으로 혁신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해외송금의 경우 한국 사용자 입장에선 더 느리고 불편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국내 송금과 비교하면 더 그렇다. 해외송금 과정에서 거쳐야 하는 중간자가 많으니 수수료가 높아지는 구조다. 스위프트 망을 쓰려면 모든 절차를 영어로 진행해야 하고, 문서의 한 글자라도 틀리면 송금 신청이 반려되는데 그 과정도 추적이 안 된다. 어느 중개은행 단계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알 수 없고, 반려 사실이 고지되지 않는다. 페인 포인트(pain point)가 큰 시장이다. 기존 망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봤다. 이를 대체할, 더 진화한 네트워크를 가져야 한다고 봤다.

또 창업할 당시 레버리지할 수 있는 기술이 블록체인이었다. 모인은 처음에 블록체인을 활용하는 것으로 시작해 점차 국내 규제에 맞춰 제도권으로 들어온 경우다. 지난해 1월 기획재정부가 부여하는 해외송금 라이선스를 받아 정식 금융사업자로서 정부의 규제 감독 하에 놓인 회사가 됐다. 여전히 블록체인으로 해외송금 문제를 해결하지만, 법적 이슈 등이 깔끔해졌다. 대신 제약사항이 뒤따랐다.

모인 안드로이드앱 화면.

Q.해외송금 라이선스를 받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것으로 안다.

해외송금 라이선스가 생긴 이후에도 블록체인 기술을 통한 해외송금 모델이 비교적 제약에서 자유로운 편이었다. 하지만 가상통화 가격이 폭락하고 사회 문제가 불거지면서 예전에 쓰던 방식도 규제 당국이 불허하는 분위기가 됐다. 명확한 규제 자체는 없다. 정부가 제도권 사업자에게 어떤 가이드를 주느냐의 문제다. 현재 방향은 하지 말라는 쪽으로 보인다.

그래서 법에 명시되지 않은, 해석의 여지가 있는 모델에 대해서 임시로나마 허가해달라고 샌드박스 임시허가 제도에 안건을 신청했다. 임시허가라도 얻어야 최소한 모인의 모델이 계속 유효한지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지금 모인 시스템은 가상통화를 빼고 운영 중이다. 2018년 1월 라이선스를 통해 법이 개정되기 전에 정부와 사전협의를 많이 거쳤다. 라이선스를 새로이 받은 후 서비스를 개시하기 위해 이미 쓰이고 있던 모인 서비스를 멈추고 2017년 중순부터 반년 넘게 라이선스를 준비했다.

서비스가 멈춘 8개월이 굉장히 힘들었다. 모든 스타트업이 그렇지만 서비스 관련 지표가 올라가다가 갑자기 ‘영(0)’이 되는 거다. 사용자들이 이탈하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내부적으로 이미 개발해둔 것도 많았지만 서비스로 가져가지 못했다.

그래도 모인 구성원이 범법자가 되는 걸 원치 않았다. 해외송금 라이선스가 생기기 전에는 법 해석에 불확실성이 있었지만 이후에는 라이선스 없이 해외송금 사업을 하면 위법행위로 간주됐다. 꽤 명확하다. 은행이 은행업 라이선스를 받고 허가받은 한도 내에서 사업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심적으로 힘들었지만, 분명 모인에 필요한 과정이었다.

Q.이번 규제 샌드박스에서 ‘가상통화를 활용하겠다’고 신청한 것으로 들었다.

해외송금 라이선스 신청서를 제출할 때 ‘가상통화’를 빼지 않으면 안 됐다. 그걸 빼고 다시 신청해서 라이선스를 받았다. 제도권 회사는 누구든 표면적으로 가상통화를 활용할 수 없는 것으로 안다.

어차피 모인이 송금인이나 수취인에게 코인을 주겠다는 의미로 규제 샌드박스에 신청한 게 아니다. 사실상 현지 은행 계좌 대 계좌만 중개한다. 가장 안전한 거래방식이다. 가상통화는 해외송금 중간과정을 정산할 때 매개체로 쓰인다. 퍼블릭에서 암호화폐를 통용하는 게 아니라 네트워크 상에서 모인과 파트너사 간의 양자 거래에 사용하려 했다. 거래 자체도 수 초 단위로 이뤄지기 때문에 정부에서 걱정하는 변동성 리스크도 미미하다. 이는 예전부터 실험해온 모델이고, 해외에서도 이미 많이 시도하는 방법이어서 폭을 줄여 신청하면 괜찮을 것으로 생각했다.

모인은 제도권 사업자로 신청과정에서 규제 가이드라인을 따르고 있다.

Q.JP모건 코인과 비슷한 목적과 구조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상용화 사례가 많은가.

이미 해외에선 많이 시도한 사례다. 일본에선 2~3년 전부터 진행됐다. 미쓰비시가 자사 은행을 위한 코인을 만들겠다고 핀테크 전시회에 들고 온 게 2년 전쯤의 일이다. 사용자들이 1대 1로 등가 교환할 수 있는 형태다. JP모건이 올해 새로 거론됐다면 일본 은행은 올해 반드시 자체 암호화폐를 출시하겠다고 소식을 이어나가고 있다.

활용 방식과 그 안에서의 구현, 알고리즘의 차이이지 생뚱맞은 모델이 아니다. 특정 회사를 언급하긴 어렵지만, 암호화폐를 100% 송금 매개로 쓰거나 일부분으로 도입한 상용화 사례가 해외에 적지 않게 나왔다. 리플이나 스텔라를 통해 송금하는 기존 플레이어도 있다. 다들 송금 시스템을 더 확장하고, 최적화하는 작업에 골몰하는 중이다. 효율화 경쟁이다. 한국에선 왜 허용이 안 되는 것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의문이 쌓이는 게 사실이다.

Q.해외송금 솔루션으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만 있는 건 아니라는 의견도 많다.

한국은 해외송금 시장에서 뒤처져 있다. 최초의 해외송금 회사가 150년 전 웨스턴유니온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1940년에 설립된 머니그램 인터내셔널도 마찬가지다. 오프라인 기반 지점을 설치해 에이전시 계약을 맺고 현금을 직불해주는 한편, 사설망을 구축해 운영하는 서비스였다. 이후 닷컴버블을 지나 웹 기반의 해외송금 서비스부터 모바일 기반, 나아가 더 새로운 메커니즘의 송금 서비스가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트랜스퍼와이즈’(TransferWise)를 꼽을 수 있다. 2011년 시작된 핀테크 회사인데 지금은 전 세계 송금량 상위 5위 안에 든다. 이들은 ‘하왈라’(Hawala)라는 중동 금융기법을 활용한다. A국가에서 B국가로 돈을 보내려는 사람과 B국가에서 A국가로 돈을 보내려는 사람을 매칭해서 상계처리하는 방식이다. 사람들끼리의 거래라 마치 국내 송금처럼, 그 지역에서 양자 간(P2P) 송금을 받는 모양새가 된다. 물론 이 방식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항상 1대 1로 수요가 맞지 않아 양국 간의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

모인은 이보다 더 효율적으로 해외송금을 할 방법이 블록체인이라고 봤다. 해외송금 구간에서 가상통화, 블록체인이 유효한 경우가 있고 그 구간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경험치를 쌓고, 최적화에 힘쓰는 회사들이 기술적으로든 서비스로든 경쟁우위를 가져갈 것이다.

현재로선 한국의 국제송금사 길목이 닫혀 있어서 블록체인 시장 초반보다 기세가 시들해졌다. 지금 출발하면 그나마 비슷한 라인에 설 수 있겠지만, 2~3년 뒤에는 출발도 무의미할 수 있다. 한국에서 전 세계적으로 적용 가능한 금융 서비스가 나올 수 있을텐데 아쉬움이 크다.

Q.대형은행이 가상통화를 활용해 결제 분야로 진출하는 게 부담일 수 있겠다.

대부분 은행 안 인트라넷에서 활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관건은 ‘많은 은행의 사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연결하느냐’이다. 리플이든 스텔라든 특정 프로토콜 하나가 완벽하다고 보기 어렵다. 리플이나 스텔라는 이제 시작단계고, 대규모 송금량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도 증명 중이다. 200여 개 국가를 감당하며 해외송금 표준으로 쓰이는 스위프트도 완벽하지 않다.  

은행들 사이에서 루트를 최적화하는 회사가 되는 게 중요하다. 모인은 블록체인까지 포괄해서 그 안에서 가장 좋은 송금 루트를 찾으려는 회사다. 트랜스퍼와이즈의 방식이 적절한 구간이 있고, 블록체인 프로토콜을 쓰는 게 적합한 구간이 있다. 경로 찾기 문제에서 제3의 길을 찾을 수도 있다. 모인은 이들을 통합해 시스템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은행이 A부터 Z까지 모두 구축할 수 없다. 은행 내 시스템이 아닌 스위프트를 쓰는 것처럼 말이다. 모인이 여러 노드를 연결하는 새로운 표준이 될 수 있다. 당연히 레거시가 두텁기 때문에 이를 뒤집는 데 리스크와 비용이 큰 상황이지만, 끝단에서는 경쟁 상대이더라도 본질적으로 은행과 경쟁한다고 보지 않는다. 함께 갈 파트너다.

Q.모인의 올해 계획은 무엇인가.

원래 규제샌드박스 심의를 받아 블록체인 분야에서 시스템 고도화를 이루는 것이었다. 관련 개발은 지난해 3월에 이미 끝났다. 샌드박스를 통해 송금 라이선스가 있는 회사와 은행이 아닌 곳도 파트너사로 등록하고자 했다. 현재로선 샌드박스 심의가 불투명해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다.

이와 별개로 서비스 국가를 늘릴 예정이다. 현재 일본, 미국, 중국, 싱가포르 위주다. 국가 수를 늘렸을 때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는지 증명할 수 있다. 서비스 운영 효율화와 확장에 주력하려 한다.

한국 안으로 들어오는 인바운드 송금도 계속 처리하고 있다. 케이팝 관련 상품, 역직구 시장은 커지고 있고 해외에서 근무하는 이들의 송금이나 국내 글로벌 회사로의 해외송금 및 정산에 대한 니즈도 높아졌다. 올해 국내로 들어오는 송금 영역도 확대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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