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가 주목해야 할 블록체인 트렌드, ‘오픈 파이낸스’ – 上

[디콘 송범근 파트너] 최근 암호화폐 담보 대출과 관련된 수치들이 빠른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더(ETH)를 맡기고 다이(DAI)를 대출받을 수 있는 메이커다오(MakerDAO)의 경우 출시 이후 현재까지 예치량이 매월 25% 상승했다. 현재까지 2억 달러가량의 DAI가 누적 대출됐다. 현재 DAI에 예치된 ETH는 약 3억 달러로, 이더 시가총액의 2%에 달한다. 머니마켓 방식의 암호화폐 담보 대출을 도입한 컴파운드(Compound) 또한 지난해 9월 출시 이후 빠르게 성장해 약 2300만 달러 어치의 이더가 예치돼 있다.

암호화폐 담보 대출이란 말 그대로 암호화폐를 담보로 돈(법정화폐 혹은 암호화폐)을 빌리는 금융 서비스를 말한다. 암호화폐 화폐 대출은 수탁형(Cusotodial lending)과 비수탁형(Non-custodial lending)로 나눌 수 있다.

수탁형은 제삼자가 중개를 맡는 방식이다. 제삼자가 예금 및 대출 이자를 결정하고 오더북(주문장부)을 통제한다. 수탁형은 사실 은행에서 제공하는 대출 서비스와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

반대로 비수탁형은 스마트 컨트랙트로 대출을 중개한다. 스마트 컨트랙트가 담보의 통제권을 받고, 상대방은 여기에 접근하지 못한다. 부도가 나면 스마트 컨트랙트가 알아서 담보를 탈중앙화 거래소(DEX)에 팔아서 수익을 채권자에게 돌려준다.

단순히 암호화폐를 담보로 쓰는 것이 핵심은 아니다. 이 대출은 중개자가 없고, 순수하게 블록체인 기반으로 이뤄진다. 기존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대출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메이커다오, 다르마 레벨(Dharma Lever), 컴파운드 등이 있다.

중개자를 코드로 대체하다

비수탁형 암호화폐 대출 시장의 성장은 금융 및 핀테크 업계에 무엇을 의미할까. 바로 ‘탈중개화’다. 기존 금융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리스크, 올바른 실행에 대한 리스크 때문에 항상 믿을 수 있는 주체가 대상자들을  중개하면서 리스크를 낮춰야 했다.

하지만 블록체인은 금융의 기본 전제를 바꿔놓고 있다. 핀테크가 기존 거대 금융회사들의 기능을 하나씩 침투하는 양상을 보인다면, 블록체인은 중개와 수탁의 역할을 하는 주체를 ‘코드’로 대체해버린다.

대표적 금융 서비스인 대출업을 예로 들어보겠다.

은행은 개인의 예금을 맡아준다. 그 돈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줘 얻은 수익으로 예금자에게 이자를 돌려준다. 예금 및 대출 이자는 은행이 정한다. 예금자는 돈을 다시 돌려받을 수 있다는 보증을 받고, 은행이 망하지 않을 것을 믿어야 한다.

핀테크의 대표 주자로 불리는 P2P 대출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투자자와 대출자 사이를 연결한다. 회사가 지급보증을 하지 않고, 양쪽을 중개하는 역할만 한다. 대출자는 직접 조달(소싱)해서, 은행이 하지 않았던 중금리 대출 시장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중개회사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최근에 이슈가 됐던 것처럼, P2P 대출업체들은 차입자를 선정하는 과정이 불투명하고, 투자자나 차입자의 돈을 횡령할 위험이 있다.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는 어떤 기관과 주체도 돈을 맡지 않는다. 스마트 컨트랙트라고 불리는 블록체인상의 코드가 대출을 중개한다. 스마트 컨트랙트 코드는 누구나 그 내용을 볼 수 있고 임의로 변경할 수 없기 때문에 특정 주체에 대한 신뢰가 필요 없다. 차입자가 담보를 내면, 스마트 컨트랙트가 통제하는 가상 계좌가 돈을 맡아둔다. 만약 차입자가 돈을 갚지 못하면, 스마트 컨트랙트는 자동으로 차입자의 담보를 거래소에 팔아 대출자의 계좌로 전송한다. 이 과정은 모두 변경할 수 없는 코드에 의해 이뤄진다. 따라서 블록체인과 스마트 컨트랙트만 믿을 수 있다면, 중개자가 필요 없어진다.

오픈 파이낸스의 등장…같은 서비스-다른 인프라

블록체인 기반이어도 금융 서비스의 기능 자체가 달라지지는 않다. 대출은 대출이고, 보험은 보험이고, 결제는 결제다. 다른 것은 그것이 이뤄지는 인프라다. ‘기존 금융망과 기관’에 의존하지 않고, 인터넷과 블록체인을 사용한 새로운 인프라 위에 구현된 금융, 이런 트렌드를 통틀어 ‘오픈 파이낸스(Open Finance)’라고 부르고 있다. 오픈 파이낸스는 최근 블록체인 업계의 화두 중 하나이다.

비유하자면, 문자(SMS)와 카카오톡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된다. 둘 다 본질적으로 메시지를 주고받기 위한 애플리케이션이다. 하지만 SMS와 카카오톡은 뒷단에서 사용하는 인프라가 다르다. SMS는 통신사의 인프라를 사용하고, 카카오톡은 인터넷 프로토콜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래서 카카오톡은 와이파이만 있으면 쓸 수 있고, SMS는 통신사를 개통해야지만 쓸 수 있다.

(image : decon)

인프라의 차이는 구현되는 서비스의 차이로 이어진다. SMS가 카카오톡으로 바뀌면서, 문자 세대는 상상하지 못했던 이모티콘이나 메신저와 연동된 게임 등이 등장했다.

이를 똑같이 금융에 적용해 본다면 은행에서 제공하는 송금 서비스는 은행 계좌가 있어야만 쓸 수 있다. 비트코인에서 제공하는 송금 서비스는 와이파이만 있다면 누구나 쓸 수 있다. 인프라가 다르기 때문이다.

디지털자산 대출 플랫폼 블로크보드(Bloqboard)의 연구 보고서에 등장한 오픈 파이낸스와 관련된 프로토콜, 플랫폼 분류.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기술 덕분에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이 제공하는 송금, 투자, 대출, 보험과 같은 금융 서비스를 기존 금융 인프라가 아니라 인터넷 기반으로 구현될 가능성이 열렸다. 인터넷과 블록체인의 조합을 가지고 금융 서비스를 더 많은 사람이 접근할 수 있게, 더 편리하게 만들어보자는 것이 바로 오픈 파이낸스의 취지이다. 전통 금융 인프라의 폐쇄성을 깨고 ‘열려 있는 금융’을 지향하기 때문에 오픈 파이낸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혹은 탈중앙화 금융(Decentralized Finance), 줄여서 ‘DeFi’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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