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변호사가 본 블록체인 계약…비정상의 정상화 단계

[법무법인 세움 정호석 변호사]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많은 프로젝트는 스마트컨트랙트(Smart Contract)를 통해 생태계를 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실제로 위 프로젝트들이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진행하는 과정을 보면 스마트컨트랙트가 아닌 기존과 유사한 형태로 계약 관계가 형성된다.

프로젝트들이 체결하는 계약 중 대표적인 예로는 팀원들과 체결하는 근로계약 및 보상 계약, 암호화폐 공개(ICO) 과정에서 체결하는 토큰 판매계약, 마케팅 계약, 그리고 상장 시 체결하는 상장계약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다양한 계약은 블록체인 밖에서 기존 계약서 형태로 체결한다. 복수의 당사자 사이의 의사표시 합치를 계약이라고 하므로 경제 주체가 활동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다양한 계약들은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이뤄져 왔기 때문에 기존의 법률 및 시장 내 관행에 따라 합의가 이뤄지고 규율이 됐다.

그런데 초기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이뤄진 법률관계는 정상적인 기준에서 한참 벗어난 모습을 보였다.

아직 법적 성격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당사자들 사이에 재산적 가치가 있다고(혹은 있게 된다고) 믿는 토큰을 판매함에 있어서 판매자는 토큰에 대해 어떠한 진술 및 보장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거래에 있어서 발생할 수 있는 어떠한 위험도 모두 구매자가 부담하도록 규정했다. 이러한 거래 조건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거나 수정을 요구하는 구매자는 ‘블록체인 생태계를 모르는 사람’으로 치부되면서 관련 거래에서 배제됐다.

토큰을 거래소에 상장하는 내용으로 발행자와 거래소가 계약을 체결하고자 할 때, 해당 계약서는 상장 조건 및 시기에 대해 다루지 않고 오히려 마케팅 방법에 대해 다루는 경우가 많이 보였다. 그리고 이러한 비정상적인 계약 형태는 규제가 모호한 상황에서 법률적인 리스크를 감소시키는 방법이라는 이유로 합리화했다.

물론 위와 같이 비정상적인 형태와 내용의 계약서를 본 많은 변호사는 해당 계약의 불공정성과 비정상성을 지적했다. 블록체인의 특수성이라는 이유로(사실은 일부 당사자의 이익, 그리고 참여자들의 탐욕이 주된 이유였지만) 그러한 지적은 무시당한 채 거래가 이뤄졌다.

하지만 블록체인 생태계 속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부작용을 경험하고 그 경험을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계약 관계의 형태 및 내용 역시 빠른 속도로 발전 및 개선돼 왔다. ICO 진행 과정에서 볼 수 없었던 고객 신원 확인(KYC), 자금세탁 방지(AML) 절차가 이제는 당연한 것으로 취급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아울러 사업이 진행되고 활성화되면서 기존에 체결했던 비정상적이고 불공정한 계약의 폐해를 깨닫고, 잘못된 계약 체결로 인해 정당한 권리 행사가 어려웠던 사업자들은 계약을 체결함에 있어 정당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계약서가 정상화되는 과정에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이 어쩌면 비이성적으로 블록체인, 그리고 암호화폐에 접근했던 시기를 거쳐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접근이 가능해지고 있다는 간접적인 증거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떠한 형태로 발전을 하게 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