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부디 올 한해 잘 넘길 수 있길 기도해본다

[클레이 서결 최고전략책임자] 짧고도 긴 한 해에 굉장히 많은 일들이 있었다. 2018년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월8일 암호화폐 가격이 역대 최고점을 기록했다. 5000만 대한민국 인구 중 무려 500만 명이 비트코인에 투자할 정도로 열풍은 굉장했다. 암호화폐 공개(ICO)에는 전 세계적으로 20조 원이라는 엄청난 자금이 투입되었다. 비트코인이 2000만 원을 돌파하던 날, 사람들은 1억 원까지 오를 것이라고 믿었다. 맥아피, 노보그라츠, 애링턴 등 세계적 유명인사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암호화폐 가격은 꾸준히 내려갔고, 꼭 1년이 지난 지금은 역대 저점에 가까운 400만 원 정도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비트코인 혹은 암호화폐 전체 시가총액의 그래프를 보면 인터넷 버블 때의 그래프와 꼭 닮아있다. 차이가 있다면 암호화폐는 단 1년 만에, 인터넷 버블은 수년에 걸쳐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암호화폐 가격과 나스닥 지수 차트 비교. (image : Yahoo Finance)

암호화폐 가격이 더 나락으로 떨어질지, 나스닥 지수처럼 극적으로 회복할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분명해 보이는 것은 투자 수단으로 암호화폐가 의미를 가지려면 블록체인 내지 암호화폐의 실질적인 쓰임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 암호화폐 시가총액 150조 원의 의미

암호화폐 시가총액은 최고점일 때 약 900조 원이었고, 2019년 1월 현재는 150조 원 정도를 형성하고 있다.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250조 원이고, 네이버나 현대자동차는 25조 원 내외 정도이다. 페이스북은 약 500조 원, 페이팔은 120조 원, 골드만삭스는 90조 원이며 테슬라는 60조 원이 채 되지 않는다.

다른 유망 기술인 VR(가상현실)/AR(증강현실)이나 AI(인공지능), 양자컴퓨팅 등의 시가총액을 정확히 매길 수는 없다. 그러나 각 분야에서 가장 첨단을 달리고 있는 매직립(Magic Leap)이나 딥마인드(Deepmind)와 같은 회사의 기업가치가 1조 원 내외로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볼 때, 분명 블록체인의 가치는 굉장히 고평가되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런 숫자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정답은 없겠지만 필자는 두 가지 포인트에서 곱씹어 보려 한다.

◆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인터넷 급’의 혁신이다?

첫 번째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인터넷 급’의 혁신을 기대받고 있다는 점이다. 고작 익명으로 투고된 9장의 논문에서부터 출발하여 자발적 기여를 통해 세상에 나온 비트코인. 거기서 파생되어 구현된 블록체인과 탈중앙화 이념, 스마트 컨트랙트와 토큰 개념 등을 더한 이더리움, 누구나 전 세계의 프로젝트에 간편하게 투자할 수 있었던 ICO 등은 분명히 인터넷이 그랬던 것처럼 이 세상에 없던 무언가가 발명된 순간들이었다.

필자는 아직도 블록체인과 인터넷의 태동이 꽤 비슷하다고 느낀다. 지난해 여름 파리 여행에서 읽은 정지훈 교수의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와 같은 책을 읽으면서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몇몇 천재들과 사이버 펑크들의 지적 호기심과 자발적인 연구개발, 그리고 자본가들의 참여로 인한 과도한 파티, 의미 없는 비난과 분쟁에 열중하는 자들과 그 와중에도 묵묵히 실체적인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재작년 창업하여 업계에 들어온 이후 가장 인상적이었던 글귀는 투자자 마틴 그림(Martin Green)의 트위터였다. 그는 인터넷과 블록체인을 비교했다. 인터넷은 정보를 디지털화하여 프로그래밍할 수 있게 함으로써 허가가 필요 없는 (Permissionless) 정보의 발행, 축적 그리고 교환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블록체인은 가치와 자산을 디지털화하여 역시 허가가 필요 없는 자산의 발행과 축적, 교환과정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마틴 그린의 트위터. 일독을 추천한다. (image : twitter)

버블이 꺼지고 난 지금 돌이켜보면 예상보다도 중앙 기득권과 규제, 법률의 힘은 강하고 ‘진정 우리가 꿈꾸는 무허가형 디지털 자산의 시대가 쉽게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누가 아는가. 인터넷의 경우 닷컴 버블 이후 십여 년에 걸쳐 많은 회사가 흥하고 망하며 시체가 되고 퇴비가 됐다. 쌓인 기술과 깨달음을 기반으로 천천히 대중화가 되고 진정한 공룡들이 등장하며 산업화했다. 초창기에 많은 정부 관료와 지성인들은 ‘이메일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에 대해 경고하고는 했다. 필자는 무엇이든 아직 속단하기 이르다고 본다.

“왜 인터넷은 실패할 것인가” (image : 1992년 워싱턴대 CES 강의자료)

◆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대중화될 것이다?

두 번째로 이 기술은 대중화될 것임을 기대받고 있다.

사람마다 약간의 이견이 있을 순 있으나, 암호화폐가 빠진 블록체인(예컨대 프라이빗 블록체인이라든지, 기타 탈중앙화 및 분산화 데이터베이스 등등) 기술에 과연 수백조 원의 가치를 당장 부여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물론 그런 기술에 의미가 있을 순 있으나, 그 기술은 현재 있는 것들을 개선할 뿐 절박한 니즈를 해소하거나 없던 시장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블록체인이 비슷하다고 했듯 우리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리플 등을 보며 대중들이 디지털 자산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모습을 상상했을 것이다. 유통 과정에서의 검열이 불가능하거나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이 디지털 자산들은 마치 인터넷에서 수많은 정보들이 자유롭게 퍼져나갔듯 대중들에게 폭넓게 쓰일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거래소를 통해 투자하려는 목적 이외에 암호화폐를 쓰는 양은 매우 제한적이다. 고작해야 하루 수천 명 정도가 디앱(DApp)을 통해 디지털 자산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성패에 대해서 지금 논하는 것은 이를 수 있다. 그렇지만 왜 아직 암호화폐는 대중화되지 못한 것일까.

가장 많이 쓰이는 이더리움 DApp의 사용자는 하루 500명 수준이다. (image : DAppradar)

◆ 수백조원 가르는 UX 허들

사실 간단하다. 어려워서이다. 암호화폐는 굉장히 어렵다. 많은 엔지니어들과 업계 사람들은 이미 익숙해진 암호화폐 사용 경험을 가지고 있다.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 못하듯 비트코인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긴 시간이 걸렸는지를 이미 잊어버린 것 같다.

일단 암호화폐를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누구나 비트코인을 신용카드나 휴대폰 결제 등으로 쉽게 구할 수 있었다면, 어쩌면 해외결제나 몇몇 서비스 이용에서 암호화폐를 꽤 적극적으로 이용했을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주식거래와 같이 낯선 인터페이스에, 빽빽한 규제로 인한 디지털고객확인(KYC), 이해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입출금 정책까지 거래소를 이용해 암호화폐를 구하는 건 아직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프라이빗 키(Private Key), 퍼블릭 키(Public Key), 가스(Gas) 등으로 대변되는 암호화폐 보관 및 송금 개념도 굉장히 난해하다. 그 밖에도 많은 이슈가 있어 필자는 ‘블록체인 UX의 7대 죄악’ 이라는 글에서 상세히 다룬 바 있다. 이 글에서 굳이 자세하게 설명하진 않겠으나, 여하튼 한 두 개만 있어도 불편해서 못쓸 것 같은 장애물들이 열 가지 정도 있다고 보면 된다.

암호화폐 조달-보관-송금-사용의 4가지 문제로 요약된다. (image : clay.one)

하지만 이를 풀어가면서 다양한 사업 기회와 실제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대중화될 수 있는 포인트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암호화폐를 사용자가 쓰기 쉽게 만드는 다양한 연구를 통해 실제로 사용이 편해지면 그때는 진정한 킬러 디앱(Killer DApp)도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넷스케이프 등이 그런 일들을 이뤄냈듯이 말이다.

◆ 디앱과 지갑 문제

어쨌든 암호화폐가 잘 응용되기 위해서는 디앱, 즉 암호화폐를 활용한 서비스가 잘 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누가 봐도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ICO를 통해 수십조 원의 자금을 조달하며 무언가를 개발했고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많은 프로젝트들이 풀고자 하는 문제들이 사실 별 수요가 없는 공허한 것이거나 기존에 있는 것에 블록체인만 얹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위에서 언급한 사용성 문제, 그리고 그와 연관이 있는 지갑 문제이다. 아마 ‘지갑 문제’라는 말은 처음 들어보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사실 이는 간단한 내용이다. 예를 들어 암호화폐를 활용하여 게임을 만들고 싶은 4인으로 이루어진 스타트업이 있다고 가정하자. 게임은 다 만들어두었는데, 그들은 어떻게든 사용자가 소유한 암호화폐를 자신의 게임에서 사용하도록 구현해야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첫 번째 방법은 자신들의 지갑으로 암호화폐를 보내서 게임을 이용하라고 하는 것이다.

쉽지 않다. 그럴 경우 몇억 원, 아니 몇백억 원이 될지 모르는 암호화폐들을 직접 보관 및 관리해야 하고, 수많은 트랜잭션에 노출되도록 해야 한다. 이는 마치 쇼핑몰을 하나 만들려고 하는데, 은행과 결제대행(PG)까지 직접 구현해야 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누가 이 일을 감히 할 수 있겠는가.

두 번째 방법은 메타마스크, 스캐터와 같은 지갑을 연동하는 안이다.

거의 모든 디앱들은 이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 이미 사용자가 쓰는 지갑을 연동해 그 안의 자산을 가지고 결제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가 휴대폰결제, 카카오페이 등 PG를 이용해 웹과 앱 서비스에서 결제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앞서 서술한 블록체인 UX의 문제점으로 인해 사용자가 쓰는 지갑은 굉장히 불편하다.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간단한 게임 하나 개발하고 싶었는데 유저 매뉴얼에 지갑과 거래소 이용 안내를 따로 해야 할 판이다. 기존의 암호화폐 마니아 외에는 디앱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없게 된다.

“이러한 인터페이스를 당신의 어머니나 할머니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가?” (image : Kyber Network와 Metamask 사용화면(좌), EOSKnight(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은 있다

필자가 재직 중인 클레이원을 비롯해 이러한 지갑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 중인 회사들이 있다. 이들은 암호화폐와 디앱 생태계에서 은행 혹은 페이팔과 같은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고 믿으며 탈중앙화와 중앙화, 보안과 사용성 사이에서 적절한 해법을 제시하려 한다. 물론 쉬운 문제가 아니지만, 그렇기에 더욱 가치가 있는 연구들이다.

일례로 암호화폐 결제 플랫폼 비트페이(BitPay)는 2017년과 2018년 연속으로 10억 달러, 한화로 1조 원 이상의 거래를 처리했다고 밝혔다. 버블이 생기건 꺼지건 간에 묵묵히 개발하며 전진하는 회사들이 있다. 이러한 결제 플랫폼과 지갑들이 발전하면서 암호화폐를 사용하기가 더 쉬워지면 더욱 기발한 비즈니스 모델이 출현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그리고 이오스(EOS), 트론(Tron) 등의 블록체인에서 도박과 게임 디앱이 빠른 속도로 활성화되고 있다. 하루 거래금액은 500억~1000억 원 사이를 넘나들고, 3~4명의 개발자가 만든 디앱이 하루 1억~2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기도 한다. 도박과 포르노는 누가 뭐래도 인터넷의 대중화에 기여한 킬러 앱이었다. 암호화폐는 이러한 도박과 포르노 산업에 양성적으로든 음성적으로든 굉장히 잘 어울리며, 이를 통해 암호화폐가 대중화되기 시작할 가능성도 있다. 인터넷처럼 규제의 틀 안에서 천천히 오기보다 막을 수 없는 물결이 되어 파괴적 혁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증권형토큰 공개(STO)와 같은 금융의 영역에서도 비록 당장은 규제의 틀 안에서만 진행이 된다고는 해도 ICO에서 볼 수 있었듯 편한 자금조달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 투자의 가능성 때문에 무언가를 기대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브라질의 지역 유지가 태국의 건물에, 우간다의 학생이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에 투자하는 세상을 상상해보는 것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2019년은 블록체인 업계에 굉장히 답답한 한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이더리움과 같은 플랫폼 개발은 큰 진척이 없고, 많은 프로젝트들과 거래소들이 자금난으로 무너질 것으로 전망한다. 명확한 미래를 그리고, 무엇이 되었든 결과로 증명해내는 팀과 회사만이 살아남아 바통을 넘겨받은 다음 유망주들과 함께 이 업계를 이끌어나가야 한다. 필자도 그 과정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뿐이다. 부디 올 한해를 잘 넘길 수 있길 기도해본다.